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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독립운동가도 친일부역자도 올바로 알리고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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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역사만화가 박시백 화백

한겨레

역사만화 ‘35년’의 7권에 실린 마지막 컷, 1945년 8·15 이후 해방공간의 혼란상을 담고 있다. 사진 비아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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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현안이 되고 있는 오늘날,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현재와도 연결된다고 봤습니다. 그 시대 역사를 정리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밝히고, 반대편에 서 있던 친일부역자들 또한 올바르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35년>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까지 10년에 걸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20권)을 펴냈던 박시백(56) 화백이 3년 만에 일제강점기를 다룬 역사만화 <35년>(비아북)을 완간했다. 이 책은 강제로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된 1910년 8월29일부터 해방을 맞는 1945년 8월15일까지 일제의 강압적 통치와 그에 맞서는 독립운동의 기록을 담았다. 2018년 1월 1~3권을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 4~5권에 이어 오는 15일 광복절에 6~7권을 함께 선보인다. 총 7권에 2140쪽으로, 등장 인물만 1000여 명에 이른다.

일제강점기 ‘35년’ 3년 만에 마무리

한일강제병합부터 8·15 해방까지

전 7권·2140쪽·등장 인물만 1천명


만주·상하이 등 답사해 자료수집

현직 역사교사 9명 제작·편집 참여

“여성혁명가 김알렉산드라 가장 감명”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 광복회관에서 열린 <35년>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박 화백은 “일제강점기 35년은 단지 치욕의 역사가 아니라 자랑스러움을 간직한 역사이며, 선조들이 치열하게 싸워온 항일투쟁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작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마지막 권인 ‘망국’편에서 <35년>을 이미 예고했다. 김구, 안중근, 유관순 등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담은 장면으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독립투쟁의 길은 추위와 배고픔, 고문과 투옥, 총살과 교수대 그리고 가족의 고난과 곤궁이 예정된 길이었다. 그 모든 걸 감당하며 역사 앞에 이름 없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망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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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화백이 ‘조선왕조실록’에 이어 일제강점기를 그린 ‘35년’을 완간하고 10일 오후 서울 광복회관에서 출간 기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허윤희 기자


박 화백은 전작보다 <35년>을 짓는 일이 더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확실한 기본 텍스트가 있어 그 자료에만 충실하면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설명하면서도 이게 확실한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끝없이 확인하고 검증할 수밖에 없었죠.”

그는 2015년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만주·상하이 답사도 다녀왔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과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자료인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60권을 기본 뼈대로 삼았고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아리랑> 등 100여 권의 단행본을 읽으며 그 시대를 재구성했다.

박 화백은 “되도록 역사 해석을 자제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까지 최대한 잘 정리해 알려주는 것에 무게를 뒀다”고 말했다. 역사를 그리는 데 균형을 잡고 학생들의 학습 효과까지 더하기 위해 현직 역사교사 9명도 제작과 편집에 도움을 주었다.

특별히 잘 그리고 싶었던 부분은 3·1운동이라고 했다. 책에서 그는 “3·1혁명”으로 일컬으며 혁명적 성격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대중운동이 전국적으로 불붙었고 민중들 사이에서 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 개혁의 요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1919년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그런 맥락 위에 있다.

“봉건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3·1혁명을 통해 근대 시민으로 성장했어요. 독립을 이루진 못했지만 이 혁명으로 훗날 해방 이후에도 4·19, 6월 항쟁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민중항쟁의 출발이 3·1운동입니다.”

박 화백은 또한 3·1운동의 주역이 민족대표 33인과 유관순뿐만은 아니었다며 “수많은 ‘유관순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책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 뿐 아니라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함께 호명한 까닭이다. 또한 그는 “등장인물 가운데 사회주의 여성 혁명가 김알렉산드라(1885~1918)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이동휘 등과 함께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독립운동을 벌인 그는 1918년 러시아 내전에 참여했다가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백군에 체포됐다. “김알렉산드라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죽을 때까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어요. 특히 사형 직전 ‘조금만 더 걷게 해주시오, 지금 내가 걸은 열세번 걸음은 조선의 열세개 도입니다’라고 남긴 마지막 진술이 감명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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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7권짜리 전집이다. 사진 비아북 제공


책의 마지막 7권은 차근차근 전후 복구의 길을 밟아나가는 일본과 분단과 혼란에 빠진 조선의 모습을 대비했다. 박 화백은 “처음 콘티를 짤 때에는 우리 상황을 그리는 장면은 없었다”고 했다. “일본이 편안하게 질서를 잡아가는 장면으로 원래의 이야기가 끝나요. 하지만 그렇게 그리고 나니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우리 상황을 대비시켜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더 많은 맥락을 넣었습니다.”

그는 왜 역사만화를 그릴까. “만화가로서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알아야 할 역사의 선을 넓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답했다.

“일제강점기 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다 바쳐 독립을 위해 싸웠던 그들의 이름을, 기개를, 싸움을 기억이라도 해주는 것이 후손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그 아는 정도의 최소한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해방 이후나 고려사 둘 중 하나를 그릴 예정입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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