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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기고] 강렬한 메시지의 힘 보여준 `5분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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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필자는 외교부 직원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15년 살았다. 영미와 한국 사이에 이런저런 문화적 차이가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연설, 즉 스피치(speech)와 관련된 것이다. 딸애가 다니던 미국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가족 사망, 시험, 친구 관계 등 예상할 수 있는 답들이 나왔다. 그런데 '스피치'가 2위를 차지해 정말 의외였다. 그만큼 그들에게 스피치는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몇 년 전 영국대사 시절 크고 작은 행사에 참석하면서 그들의 스피치 스트레스는 바로 나의 것이 됐다. 디너, 리셉션, 생일파티 등 행사 성격과 관계없이 사람이 열 명만 모여도 자연스레 스피치 순서가 있었다. 한국대사는 항상 준비하고 있는 편이 안전하다. 스피치가 시작되면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의자를 연설자 쪽으로 돌리고 지나칠 정도로 경청했다. 당신이 어느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다면 다른 사람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한마디는 해야 한다는 주문 같기도 하고, 사람의 경륜과 교양을 측정하는 시간 같기도 했다. 그들이 스피치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또 스피치로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조직의 평판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게 된 후부터는 스피치할 내용을 메모하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다녔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직종과 관계없이 영국 사람들은 스피치 레슨을 받기도 한다. 가르침은 단순했다. 긴 것은 물론이고 짧은 것이라도 반드시 자기 생각을 자기 말로 써서 미리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흥 연설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는 얘기는 믿기 어렵다. 메모를 펴놓고 연설할 때도 수십 번 연습해서 거의 외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났다. 같은 말을 해도 환담과 연설은 다르다. 연설은 내용이 부실하면 도중에 스스로 진땀이 난다. 영국을 떠날 때쯤 알게 된 것은 분명한 메시지를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좋은 연설이라는 것이다. '절제(understate)'가 포인트다.

한국 사회는 내용보다는 모양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대개 연설을 잘 안 하지만 하는 경우도 대부분 안 듣는다. 누가 연설을 했는지에는 관심을 가져도 내용이 어땠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드물다. 노래도 시켜놓고는 잘 안 듣는다. 공직도 마찬가지다. 정부 주요 보직을 시켜놓고는 수시로 바꾼다. 그들이 그 자리에서 무슨 성과를 거뒀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드물고 주로 그다음 보직이 뭐였는지 묻는다. 실제로 많은 고위 공직자는 업무를 시작한 다음 날부터 다음 인사에 신경을 쓴다. 내용을 중시하지 않으니 실력이 중요한가.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나. 두루 인사 잘하고 내용이 분명치 않으면 원만하다며 호평하는 사회다. 그런데도 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이 신기하다. 한국은 엘리트들이 잘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아닌 듯하다.

최근 윤희숙 초선 의원의 연설이 화제다. 오랜만에 내용 있으면서도 절제된 표현으로 된 연설을 듣고 사람들 마음이 움직였다. 말이 되는 연설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뉴스거리가 돼선 안 된다. 자극적인 말로 상대방 말꼬리를 잡는 것이 무슨 연설인 것처럼 대접받아왔다. 특히 얼굴과 이름을 가린 채 저급한 언어를 골라 쓰며 표현의 자유를 남용하는 댓글 문화는 연설문화와 상극이다. 민주주의는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연설하는 자와 연설을 경청하는 자로 만들어진다. 윤 의원 연설. 작은 사건이지만 한국 정치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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