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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국보법 사범' 첫 대법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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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이흥구 판사 임명제청

조선일보

김명수 대법원장은 다음 달 임기(6년)를 마치고 퇴임하는 권순일 대법관 후임으로 이흥구(57·사진) 부산고법 부장판사를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법조계에선 "코드 사법의 화룡점정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그가 국회 인준 표결을 통과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총 13명 중 6명이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後身)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 출신으로 채워진다. 이 단체들 소속은 아니지만 뚜렷한 진보 색채를 보이는 다른 대법관을 합치면, 이번 인사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과반(7명)이 '진보 대법관'으로 채워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대법관은 "한쪽으로 치우친 대법원의 판결을 국민이 수긍하겠느냐"고 했다.

이 부장판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각별히 아끼는 판사이기도 하다. 현 여권과 대법원장에 의한 '코드 인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 부장판사는 서울대 재학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가 대법관이 되면 '국보법 위반 1호 판사'에 이어 '국보법 위반 1호 대법관'이 된다. 그에게 유죄 선고를 한 1심 판사가 권순일 대법관이다.

이 부장판사는 1990년 사법시험 합격 인터뷰에서 "저의 합격으로 국가보안법 자체를 재평가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85년 서울대 이념 단체였던 '민주화 추진위원회(민추위)' 일원으로 서울 구로공단 노동조합 파업을 지원하며 '독재 타도' 구호를 적은 머리띠, 각목 등을 준비한 혐의로 구속됐다. 1심에서 징역 3년, 2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1987년 특별 사면을 받았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서울대 공법학과를 나온 이 부장판사는 1993년 임용돼 27년간 대부분을 부산·경남 지역 법원에서 근무했다. 그를 아는 판사들은 "말수는 적지만 온화하고, 선후배 판사들과 소통도 잘해 신망이 두터운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민사 재판을 오래해 성향이 뚜렷한 판결을 많이 내놓진 않았다. 다만 1995년 '김일성 전기(傳記)' 판매자에 대해 "국민은 우리 사회 체제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며 그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었다. 이 일로 그는 '안기부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2014년엔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군사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이들의 유족이 낸 재심 청구를 최초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인사를 '코드 대법원 완성 인사'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존 대법원의 '진보 6인방'으로 꼽히는 김명수 대법원장(우리법·인권법)과 박정화(우리법)·민유숙·김선수(민변)·노정희(우리법)·김상환(인권법) 대법관에 이어 우리법 출신의 이흥구 부장판사가 추가 투입됐다는 것이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공식 판결(다수 의견)을 내릴 수 있는 과반(7명 이상)을 확보한 것"이라며 "진보적 대법원 판결이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저서에서 서울 법대 동기인 이 부장판사를 가리켜 "정의감이 남달리 투철한 동기"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2017년 취임 후 이듬해 2월 인사에서 번번이 고법부장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던 이 부장판사를 승진시켰다. 김 대법원장은 사석에서 "이흥구는 가장 훌륭한 판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 후 부산을 방문했을 때 이 부장판사와 그의 아내인 김문희 부장판사(현 부산지법 서부지원장)를 따로 불러 식사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법원 관계자는 "식사 소문이 퍼지면서 이흥구 부장은 대법관이 될 것이란 말이 돌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김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을 받아들여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이 부장판사는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된다. 이후 본회의 인준 표결을 통과하면 새 대법관으로 임명된다.





[조백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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