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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큰손 사라진 미술시장…3040 젊은 컬렉터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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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달 케이옥션 경매에서 독일 작가 노베르트 비스키 그림이 시작가 700만원의 2배 넘는 1600만원에 낙찰됐다. [사진 제공 = 케이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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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소나무 아래 호랑이를 그린 민화 '송하호도'가 치열한 경합 끝에 시작가 500만원의 13배에 달하는 6500만원에 낙찰됐다. 앞서 3월 경매에서는 백련 지운영의 '동파선생적벽유도'가 시작가 200만원의 5배가 넘는 1150만원에 팔렸다.

요즘 미술품 경매에서 가장 불꽃이 튀는 출품작은 수백만~수천만 원대 작품이다. 특히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미술품이 나오면 30·40대 컬렉터가 쉴 새 없이 응찰 패들(Paddle)을 든다. 미술품을 좋아하지만 아직은 수억 원대 작품 구입은 부담스러운 젊은 컬렉터들이다. 이들이 최근 3년새 경매시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큰 손' 컬렉터들이 종적을 감추고 있는 미술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술품 경매시장이 반 토막이 났지만 서울옥션의 3000만원 이하 낙찰작은 총 1421점으로 전년 동기 1188점보다 20% 늘었다. 반면에 올해 상반기 서울옥션의 1억원 이상 낙찰작은 총 26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4점보다 52%나 급감했다. 그나마 신규 컬렉터들의 구매력으로 미술품 경매시장이 어느 정도 버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치 코로나19 타격 후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매도한 국내 주식을 사들인 동학 개미 군단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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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옥션 관계자는 "주로 500만원 이하 저평가된 출품작의 경합이 치열하다"며 "젊은 컬렉터들이 낙찰작을 집에 걸어놓은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자랑하는 게 기존 전통 컬렉터들과 다르다. 투자 목적뿐만 아니라 미술품을 즐기는 취미에 돈을 쓰는 젊은 고객이 많다"고 분석했다.

케이옥션 7월 경매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지난달 독일 작가 노베르트 비스키의 그림이 시작가 700만원의 2배가 넘는 1600만원에 낙찰됐다. 2006년 독일 월드컵 포스터 제작에 참여한 작가 작품으로 오랜만에 국내 경매에 나온 데다가 외국 시장 거래 가격보다 낮은 편이어서 경합이 붙었다. 이날 시작가 900만원에 나온 일본 인기 작가 구사마 야요이 석판화도 1550만원에 팔렸다. 케이옥션 관계자 "주로 휴대폰 앱, 게임 등 정보통신(IT) 업계 신흥 부자들이 신규 컬렉터로 경매에 들어오고 있다. 이들은 미술 경기가 침체된 지금이 투자 기회라고 생각하며,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경매시장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경매 대중화로 시장 성장 잠재력은 커졌지만 큰 손들이 지갑을 열어야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지난해 말 시작된 정부의 미술품 양도 차익 과세 강화 움직임에 종부세·소득세·법인세 등 세금폭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술품 투자가 날로 위축되고 있다. 경매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김창열의 초기작 '물방울'(1979)이 지난 7월 케이옥션 경매에 시세보다 낮은 가격인 1억2000만원에 나왔지만 유찰됐다. 상속세 면세 혜택이 있는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들도 최근 잇달아 새 주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한국과 달리 유럽과 미국에서는 금과 같은 안전자산으로 보는 미술품 투자가 살아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부동산과 주식 투자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환금성과 수익성이 높은 미술품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경매사 소더비는 지난달 초 온라인 경매에서 미술품 3억6320만달러(약 4355억원) 규모를 팔아치웠다.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표현주의 화가 베이컨의 1981년작 '아이스킬로스(그리스 극작가)의 오레스테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은 세폭 재단화'로 8460만달러(약 1014억원)에 낙찰됐다. 경매로 팔린 베이컨 작품 중 세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올해 7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18억4000만홍콩달러(약 2860억원) 규모를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산유의 '푸른 화분의 흰 국화'는 작가 정물화 부문 최고 경매가 1억9162만홍콩달러(약 297억원)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등 소수 글로벌 작가에 의존하는 국내 경매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외국 유명 작가 작품은 글로벌 경매사를 통해 구입하는 컬렉터가 늘어나 국내 경매사 입지가 더 좁아지고 있다.

경매사 관계자는 "국내에선 아직도 수십억 원대 고가 작품을 사면 국세청의 표적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돈이 많은 게 죄가 되는 세상에서 누가 비싼 그림을 사느냐"고 반문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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