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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나목 - 박완서 [조은정의 내 인생의 책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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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용기, 박수근의 끈기

[경향신문]

경향신문

<나목>을 정독한 것은 순전히 박완서가 마흔에 발표한 소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다시금 공부를 시작하던 마흔 살의 나는 마흔 살의 박완서가 가졌던 용기가 필요했다. 이른바 집에서 살림하던 그가 소설가로 등장한 나이가 마흔 살, <나목>은 소설가로 있게 한 첫 작품이다. 작가의 글에서 탈주할 수 있는 독자는 없다. 소설가의 존재를 대면하고 싶어 집어 들었던 책에서 내가 만난 것은 옥희도로 표현된 화가 박수근이다.

소설 속 화자 이경에게 옥희도는 도록을 들고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도 했다며 자신의 그림을 보여준다. 비록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하지만 자신이 화가임을 잊지 않는다는 제스처였을 것이다. 워킹맘이면서 공부하고 싶은 나의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이 옥희도가 옆구리에 끼고 온 도록처럼 느껴졌다.

사실 소설 속 내용과 관계없이 박완서에게서는 마흔 살에 학생이 될 수 있는 용기를, 박수근에게서는 좋아하는 일을 쉼 없이 하는 끈기를 배웠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때는 공부를 향한 욕망이 너무나 절실해 어디서든 위로를 찾아야 했고, 미술사를 전공하는 내게 <나목>은 적절한 언덕이었다.

박수근은 그림의 틀에까지 화면 속 필치가 묻어 있게 한 화가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자신의 시각에 존재하는 것을 재현했다. 모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전쟁의 시기에도 그는 빛나는 예술혼으로 ‘부우연 캔버스’를 메꾸어갔다. ‘예술은 가장 선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으로 시대를 드러냈다. 때로 예술이 무엇일까 의문이 들 때마다 이 한없이 선량하고 순수한 작가의 가장 원초적인 예술에 대한 정의가 먼저 떠오른다.

조은정 | 미술사학자·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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