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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기억할 오늘] "잭슨 폴록이 XX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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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호턴의 행운?(8.12)
한국일보

테리 호턴과 잭슨 폴록의 기이한 인연을 통해 예술계의 권위주의를 고발한 2006년 다큐 포스터. 위키피디아.


1992년 캘리포니아, 59세 여성 테리 호턴(Teri Horton)이 한 자선단체가 운영하던 코스타 메사(Costa Mesa)의 중고품 매장에서 그림 한 점을 샀다. 친구 선물용으로 고른, 큼지막하고 '우스꽝스러운' 작품이었다. 8달러 달라는 걸 흥정 끝에 5달러에 샀지만 친구는 탐탁지 않아 했고, 친구 차에 실리지도 않았다. 그는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그림을 '마당 세일(yard sale)'에 내놨는데, 한 미술 교사가 '잭슨 폴록의 그림과 흡사하니 전문가에게 보여 보라'로 권했다고 한다. 호턴의 첫마디가 "Who the Fxxx is Jackson Pollock?"이었다.

25년 넘게 트레일러를 몰다 은퇴한 중학교 중퇴 학력의 호턴이, 내로라하는 뉴욕 화랑가 거물들과 저명 비평가, 감식인들과 그림의 진위 및 가치를 두고 벌인 긴 줄다리기가 그렇게 시작됐다. 그 과정을 2006년 다큐멘터리 'Who the $&% Is Jackson Pollock?'이 담았다.

전문가 평가는 '가짜'쪽이 우세했다. 그림의 '행적'이 불투명하고, 작품에 서명이 없었다. 호턴의 사회적 지위 및 구매 경위도 전문가들은 고려했다. 다큐는 예술계의 오만과 배타성, 계층ㆍ계급의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호턴은 전문가들을 불신하며 버텼다. 큰돈을 들여 예술품 전문 과학 감식가를 고용, 캔버스에서 폴록의 지문 일부를 확인했다. 이번엔 감식 기법 시비가 이어졌다.

이동주택 월세조차 내기 힘든 가난을 견디면서도 호턴은 한 미술상의 200만달러 제안과 사우디 수집가의 900만달러 제안을 거부했다. '최소 5,000만달러는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합리적 판단'이었다. 2006년 유사한 크기의 폴록 작품 'No.5, 1948'은 1억4,000만달러에 팔렸다.

다큐에서 호턴은 "(그들의 멸시는) 모욕적이지만, 다리 밑에 사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 1월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유언을 아들에게 남기고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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