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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예쁘지 않아서 죄송한데요, 어쩝니까?"…'퀸 메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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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 퀸 메릴 (사진=현암사 제공) 2020.08.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젊은 여배우가 1976년 리메이크 영화 '킹콩'의 오디션을 보러 갔다. 뉴욕의 연극 무대를 벗어나면 사실상 무명이던 그녀는 영화 쪽에서 일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긴 금발 머리, 도자기 같은 피부, 도드라진 광대뼈, 매부리코의 조합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냈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 그림 속의 신비로운 모나리자가 1970년대에 환생한 것 같은 모습이었던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보여준 비범한 연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재능이 남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킹콩'의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가 본 것은 그녀의 외모가 전부였다. "진짜 못생겼네. 뭘 이런 걸 데려왔어?"라며 이탈리아어로 아들 페데리코에게 불평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운 터라 그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 "기대만큼 예쁘지 않아서 죄송한데요, 어쩝니까? 보시는 게 다인데"라며 그녀는 이탈리아어로 말하고선 스스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메릴 스트립이 영화 '킹콩' 오디션에서 맞닥뜨린 일이다. 그 후 오늘날까지 40여 년간 6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해온 메릴 스트립을 과소평가한 사람은 그가 마지막이 아니었지만 그런 순간마다 그녀의 뛰어난 지성, 한결같은 품위, 할리우드의 모욕적인 여성혐오자들을 신랄하게 한 방 먹이는 당당함이 더 빛을 발했다.

자기 딸들을 포함한 젊은 배우들이 로버트 드니로처럼 다양한 역을 연기할 수 있는 길을 터줬던 메릴 스트립은 두려움과 억압을 극복하고 용기 있고 진실한 삶을 살면서, 여성들에게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줬다.

이 책은 한 배우의 성공담이기보다, 사람과 인생을 탐구해가는 배우 메릴 스트립이 고민하고 기다리고 결정했던 과정과 한 시민으로서 살아온 그녀의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그녀가 빙의해 녹아들었던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살았던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다. 할리우드 영화계와 촬영 현장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도 재미를 선사한다. 에린 칼슨 지음, 홍정아 옮김, 416쪽, 현암사, 2만원.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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