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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미국서도 러시아서도… 정치에 휘둘리는 '코로나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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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초' 코로나19 백신 승인 선언
대선 앞둔 트럼프 경쟁심에 불 붙일까
과학계 "성급한 백신 사용 승인 안돼" 우려
한국일보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방호복을 입은 한 연구원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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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미 74만명이 숨졌고, 확산 기세가 여전히 맹렬한 감염병 위기 앞에 백신은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최초’ 타이틀과 정치적 동기에 의해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백신이 양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발 속도전이 가열되면서 “백신은 인류 공공재”란 오랜 상식이 빈 껍데기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프랜시스 콜린스 미 국립보건원(NIH) 원장은 11일(현지시간) 미 CNN방송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일(11월 3일) 전 코로나19 백신 승인을 미 식품의약국(FDA)에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 “허용해선 안 될 일”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 내 감염병 최고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알레르기ㆍ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도 언급하면서 “틀림없이 그 백신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깜짝 대선 전략으로 10월 중 백신 승인을 검토하는 트럼프에 맞서 보건당국의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발언이었다.

백신은 트럼프에게 코로나19라는 재선 악재를 털어낼 확실한 카드다. 그는 지난달 27일 백신 생산시설을 직접 방문하고, 최근 빠른 승인을 장담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등 백신을 대선에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다. 여기에 이날 러시아의 백신 승인 소식은 트럼프를 한층 자극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재선을 원하는 트럼프가 백신 상용화의 최종 관문인 3상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미 제약사 두 곳(화이자ㆍ모더나)에 시험 기간을 단축시키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백신 승인 결정은 더욱 비과학적이었다. 3상 임상 전이고, 심지어 그간의 연구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다. 정치적 목적 외에 승인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푸틴의 의도는 ‘스푸트니크 V’로 명명된 백신 이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옛 소련이 쏘아 올린 최초 인공위성을 차용해 서방과의 과학기술 대결에서 승리한 과거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제히 제기됐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냉전시대 사고방식으로의 복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과학계는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마크 포즈난스키 미 매사추세츠병원 백신ㆍ면역치료센터장은 WP에 “대중에게 백신의 유용성을 빠르게 보여주려는 정치 세력과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될 때까지 기다리려는 과학자 간 긴장이 모든 국가에서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효능을 떠나 한 국가에서 백신을 선보이면 도미노처럼 다른 국가들도 빠른 승인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되는 탓이다.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는 당연히 감염병으로 고통 받는 시민들의 몫이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재확산 추세도 각국의 백신 조기 출시 압력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준 글로벌 확진 환자 수는 2,029만명(미 존스홉킨스대 기준)을 넘겼다. 그나마 확산세가 주춤했던 유럽 지역도 코로나19 창궐 당시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프랑스는 10일 하루 신규 감염(1,397명)이 전날 대비 두 배로 늘었고, 스페인은 지난 일주일 동안 일일 평균 확진자가 5,000명에 달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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