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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삶과 문화] 비온 뒤 달팽이를 돌려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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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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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사제관은 성당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보통의 일반 주택보다 화단도 크고 마당도 넓습니다. 마당은 시멘트로 포장을 해서 행사장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한쪽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비가 그친 후 여전히 물기가 촉촉하게 남아 있을 때면 화단에 있던 달팽이들이 마당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화단이 나름 크기도 하고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인지 달팽이들이 많이 사는 것 같은데 문제는 마당에 차도 사람도 자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달팽이들이 차 바퀴에 깔리기도 하고 사람 발에 밟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달팽이를 몇 번 밟아 본적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이사 온 지 한 이주일쯤 지난때였습니다. 오후 늦게까지 비가 내린 날 한밤중에 차를 주차하고 현관을 향해 걸어가는데 발에 뭔가가 밟히면서 '우직'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달팽이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유리 밟을 때 나는 소리도 아니고 플라스틱 밟을 때 나는 소리도 아니고 해서 '참 이상한 것을 밟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밟혀서 껍질이 깨진 채 죽어 있는 달팽이를 보고서야 어제 제가 밟은 것이 달팽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무리 미물이고 실수였다지만 한 생명체를 제가 죽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영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나름 조심한다고는 했지만 몇 번의 실수를 더 했고 그래서 이제는 비가 그치면 마당으로 나온 달팽이를 일부러 찾아내서 다시 화단으로 돌려보냅니다. 하여튼 저는 단지 걷거나 운전하는 등 평범한 일상 생활을 했을 뿐인데 그런 나로 인해 의도치 않게 희생당하는 달팽이를 보면서 "누군가 장난으로 연못에 던지 돌에 거기에 사는 개구리는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전혀 의도하지 않고 무심코 던지 나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고 반대로 상대방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가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오해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당시 상황이 우연하게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자존감이 낮아서 일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처들이 금방 잊혀지거나 쉽게 치유된다면야 좋겠지만 어떤 상처는 가슴에 깊이 남아 평생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큰 상처 하나쯤 가슴에 가지고 있고 평소에는 없었던 일처럼 잊고 살다가도 어느 순간 되살아나 힘들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학교나 직장 등 일상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알지만 입 바른 소리를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굳이 의도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하고, 또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며칠 전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마당으로 나온 달팽이를 다시 화단으로 돌려보내며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 그리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상처 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고 저 스스로도 더 너그럽고 배려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현재 한국에 큰비로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희망과 용기 잃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한국일보

양상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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