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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매경춘추] 평화냐 정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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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친척이 북한에 사는데 어떻게 연락이 닿아서 탈북을 해서 남한에 오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필자처럼 부모 중 북한 출신이 있는 경우 완전히 엉뚱한 상상도 아니다). 우선 탈북의 방법론을 떠나서 좀 힘들더라도 위험한 선택을 하지 말고 북한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해줄 것 같다. 나의 혈육이니까 그렇다. 만일 중동 어느 나라의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같은 질문을 한다면, 독재를 참고 살지 말고 탈출하거나 저항하라고 충고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러한 딜레마는 국제적으로 평화와 인권을 다룰 때도 흔히 제기된다. 즉, "평화(peace)와 정의(justice)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독재국가의 국민이 인권 탄압을 참고 살면 평화는 유지될지 모르지만 정의가 훼손되고,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면 평화가 깨지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정의가 존중되지 않는 곳에서 평화가 계속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어느 시점에서 평화보다 정의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현대 인권의 개념은 18세기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처음 반영됐다. '평등'에 기반을 둔 인권 개념이 왕정을 종식시키고 국민이 주권을 갖는 민주주의를 성립시키는 기반이 된 것이다. 그 후 민주주의는 계속 확산돼 이제는 세계 국가의 60% 이상이 민주국가로 분류된다. 먼 곳에서 찾을 것 없이 우리나라가 민주화의 좋은 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200년 전 서구 국가는 물론 최근 민주화를 이룬 나라들도 하나하나 보면 모두 힘든 과정을 거쳤다. 특히, 개발도상국은 집권자가 경제성장을 위한 강력한 리더십을 이유로 정치적 민주화를 미루는 경우가 많다. 국민을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독재와 탄압으로 정권을 유지하려 한다. 국민의 불만은 더 커지고 어느 시점이 되면 참고 있던 사람들도 죽음을 무릅쓰고 독재에 항거하게 된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내전의 상당수가 이런 패턴을 따르고 있다.

북한은 인권 상황이 나빠 매년 유엔 인권 결의 대상이 되는 전 세계 10여 개국 중 하나다. 그러한 국제적 압박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보고관은 작년에 "북한 인권 상황에 변화가 없고, 식량난 책임이 정권에 있다"고 말했다. 이 시점에 우리는 북의 형제 자매들이 평화와 정의 중 어느 쪽을 선택하기를 바랄까. 어려운 문제다.

[오준 경희대 교수·전 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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