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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충무로에서] `학습 격차` 상처 평생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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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중학교 때 '짝지'를 성적에 따라 담임이 정해준 적이 있다. 상위권 학생을 먼저 앉히고, 그 옆에 하위권을 한 명씩 앉히는 식이다. 짝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질문도 해가며 좋은 자극을 받으라는 게 선생님 뜻이었던 것 같다. 교실 앞에 한 줄로 선 학생들 얼굴을 보며 신중하게 짝지를 배정하던 담임 얼굴이 아직 선하다.

새삼 옛 학창 시절이 떠오른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교육 양극화' 때문이다. 소득이나 부모 학력 등 가정 형편에 따라 학생의 학습 성취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문제가 코로나19로 원격 수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더 심각해졌다.

가정 형편이 여유 있는 학생은 부족한 교과 공부를 사교육으로 메우고 있다. 여유가 없어도 최상위권 학생들은 자기 주도로 원격 수업을 따라가고 있다. 문제는 보통의 학생들이다. 공부도 그럭저럭 곧잘 하는 서민층 자녀.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숙제도 꼬박꼬박 제출하고,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웃으며 어울리는 학생들이다. 이런 성실한 학생들이 '중위권'을 형성한다.

원격 수업으로 이 같은 학교생활 패턴이 깨졌다. 부모님이 출근하면 혼자 컴퓨터를 켜 온라인 강의에 접속해야 한다. 같은 반 친구는 말도 섞어보지 않은 어색한 애들이 대부분이다. 교실에서처럼 선생님에게 손을 들고 '질문 있어요'라고 온라인으로 묻기도 어색하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컴퓨터는 '공부용'이라기보다 원래 '게임용'으로 익숙하다.

교사 다수는 1학기 원격 수업을 평가하며 "중위권 학생이 하위권으로 상당수 떨어졌다"고 평가한다. 교실에서 옆에 앉혀놓고 칭찬하며 지도했으면 충분히 상위권으로 올라갔을 친구들이다. 대신 그 자리는 집중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교육부가 한 학기가 다 끝나고 '교육안전망 강화 방안'을 지난 11일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초등학생의 국·영·수 학력 진단을 전수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학력이 사회에 진출해서 경제적 성공이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 누군가 제대로 지도해 줬으면 잠재력을 꽃피웠을 학생들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학습 격차의 상처는 평생을 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중학교 때 그 선생님처럼 학습 격차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야 한다.

[사회부 = 서찬동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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