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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굿과 록의 만남? 아주 굿이죠!” 추다혜차지스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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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추다혜차지스의 네 멤버 이시문(왼쪽부터, 기타), 추다혜,(보컬), 김다빈(드럼), 김재호(베이스). 동양표준음향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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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전자기타 소리에 무령(巫鈴ㆍ무당이 굿하거나 점칠 때 쓰는 방울) 소리가 스며든다. 굿판에 뛰어든 록밴드, 록 공연장에 나타난 무당. 이 무슨 조화인가 싶은데 이걸 만들어 낸 밴드가 있다. ‘추다혜차지스’가 최근 내놓은 첫 앨범, 제목부터가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다.

‘여봐라~’라며 속사포 랩처럼 시원하게 뿜어내는 굿 소리에 강렬하고 묵직한 기타 연주가 무령처럼 출렁대는 1분짜리 인트로 ‘언두(Undo)’를 시작으로 앨범은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다. 사이키델릭과 솔(Soul), 레게 음악이 굿과 맞부딪치면서 만들어 내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혁신과 파격이 가득한 이 대담한 도전에 일부 음악 평론가들은 벌써부터 “올해의 앨범이 나왔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밴드, 추다혜차지스 멤버 4명을 최근 서울 연남동 카페에서 만났다.

밴드의 간판, 보컬 추다혜는 이미 유명인이다. 서도민요와 연기를 공부한 소리꾼 겸 배우인 추다혜는 민요 록 밴드 씽씽에서 시원하게 내지르는 서도소리를 들려 줬다. 그런데 이번엔 굿이다.

“민요에 비해 굿 음악은 훨씬 날것에 가까워요. 첫 개인 프로젝트를 한다면 ‘영성’에 맞닿아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우리만의 정체성이 담긴 ‘무가(巫歌)’에 끌렸죠. 그 때 또 무속인을 만나 소리를 배울 수 있었어요.”



공을 제법 들였다. 굿을 배우려고 제주에 한참을 내려가 있었다. 황해도, 평안도 굿을 전수받은 무속인을 만나 소리를 배웠다. 판소리나 민요와 달리, 굿은 정해진 학습법이 없어 적잖이 애를 먹기도 했다. “한 소절씩 한 소절씩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배우는 게 아니라서 전체 소리를 녹음해서 한 음 한 음 따야 했어요. 민요를 배울 때보다 서너 배는 시간이 더 걸렸던 거 같아요. 같은 지역이라도 소리가 다르고, 같은 분이라도 할 때마다 달라져서 배우기는 더 어려웠죠.”

어느 정도 배웠을 때 레게 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기타리스트 이시문과 의기투합했다. 평소 씽씽의 팬이자 함께 공연하는 동료이기도 했던 이시문은 “추다혜의 에너지에 끌렸다”고 했다. 이후 ‘까데호’와 ‘김오키 뻐킹매드니스’에서 호흡을 맞췄던 베이시스트 김재호, 드러머 김다빈이 합류했다. 인디 음악계 재주꾼들이 모인 밴드가 탄생한 것이다.

곡은 모두 추다혜와 이시문이 함께 썼고, 이시문은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시문은 “굳이 신나게 한다기보다는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감정대로 곡을 만들려고 했다”며 “무가에 양악기를 욱여넣는다거나 애써 국악 장단을 연주하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앨범에는 평안도, 제주도, 황해도의 무가가 세 곡씩 담겼다. 평안도 굿으로 신을 부른 뒤 제주도 굿으로 부정을 씻고 신과 인간을 화합시킨 다음, 황해도 굿에서 명복을 빌어주며 끝내는 구성이다.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에다 예상 밖의 박자와 장단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서 긴장감을 안겨주는데 그 안에서 신묘한 그루브가 넘실거린다. ‘비나수+’와 ‘리츄얼댄스’는 그중에서도 발군이다. 네 멤버가 혼연일체로 한판 굿을 벌이는 느낌이다. 김재호는 “보컬에 맞춰 악기가 따라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게 멋지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참고로, 그래서 밴드이름에 차지스가 붙었다. ‘차지스’는 영어의 차지(charge)가 아니다. 각자의 몫을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순 우리말이다. 그래서 영어표기도 ‘Chagi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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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다혜차지스 첫 앨범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커버 앞면. 동양표준음향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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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시장이 예년 같았으면 각종 콘서트 무대와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을 시기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코로나19 시대. 갑갑증이 일 법도 하다. 추다혜는 “공연이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지난달 17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연 ‘문밖의 사람들: 문외한’ 공연에 출연했고 소규모 클럽 공연, 라디오 출연도 했다”며 “이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만 나가면 된다”면서 웃었다.

다음 앨범엔 더 대담한 도전을 꿈꾸고 있다. 추다혜는 “이번엔 3개 지역 굿을 담았으니 서울 굿 등 다른 지역 굿도 한번 건드려 보고 싶다”며 “같은 걸 반복하는 건 의미 없으니 밴드 연주도 뭔가 새롭게 선보이겠다”고 다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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