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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ESC] 묵직한 맥주, 와인과 동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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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술집 ‘누바’. 백문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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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술을 섞어 마시다가도 결국에는 와인으로 귀결된다.” 애주가 선배들이 자주 하는 소리다. ‘이게 무슨 사대주의적인 발언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와인은 부담스럽다. 주머니가 탈탈 털릴 것만 같은 두려움과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와인을 공부하면서 그 향과 풍미를 알아채려고 노력하면서부터다. 소주잔이나 물 잔을 와인 잔 돌리듯이 하거나 잔에 코를 박고 향을 맡으려 했다. 꼴 보기 싫은 행위다. 와인에 너무 집착하는 이로 넘어가는 첫 번째 수순이라고 선배들은 말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나날들에 축축한 날씨까지 겹치니 여지없이 술이 또 당겼다. ‘비 오는 날 막걸리’ 같은 뻔한 공식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와인에 푹 빠졌어도 어째 요즘 같은 날씨엔 시원한 술이 생각난다.

얄미운 애주가 선배에게 어쩔 수 없이 응급 구조 요청을 한 지 십여분만에 갈 만한 술집을 알아냈다. 지하철 2호 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누바’는 벨기에 맥주 전문 펍이다. ‘흔하디흔한 해외 수제 맥주를 파는 곳이 아닐까.’ 기우에 불과했다. 부침이 심한 홍대입구 상권에서 무려 10년을 버틴 유서 깊은 곳이다. 칵테일 바를 연상하게 하는 단단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홉과 보리의 구수한 향이 콧속에 가득 퍼진다. 시끌시끌하고 정신없는 여느 맥주 펍과는 달랐다. 누바에서는 주인이 직접 수입하는 벨기에 맥주(사진)를 마셔야 한다. 벨기에 맥주 5가지를 주문했다. 맥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윽고 나온 맥주의 모양새가 남다른 것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미국식 수제 맥주가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라면, 벨기에의 정통 수제 맥주는 와인에 가까울 정도로 우아하고 정중한 느낌이었다. 향을 먼저 맡고 입안에서 맛을 보고, 마지막에 남은 아로마를 즐기는 방식은 와인과 다를 바 없었다.

늘 같은 술만 마실 수는 없다. 세상에는 하늘의 별만큼 다양한 종류의 술이 있다. 술도 미식의 한 분야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백문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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