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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ESC] 상사와 후배 사이…중간관리자,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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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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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인 임현주와 젊은 나이에 스타트업에 합류해 직급 높은 관리자가 된 A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 사이이다. 둘은 일적인 관계가 얽혀 있지 않아 거리낌 없이 서로에게 회사생활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네가 맞아, 그렇지.’ 맞장구를 쳐주다가도 필요한 순간에는 각자 사원과 관리자의 입장을 들려주며 객관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루는 임 사원이 떡볶이를 주문했다.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마다 고르는 단골 메뉴이다. 갓 나온 떡볶이를 포크로 푹 찍으며 임 사원이 말했다. “지난주에 회사 선배 때문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어. 직급 달기 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좀 강압적으로 변했다고 할까.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드나 봐.” 이야기를 듣던 A가 말했다. “나도 옛날 같으면 그 선배가 변했다고 맞장구칠 텐데, 그 입장이 돼보니까 알겠더라. 자율적으로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일이 잘 굴러가는 게 아냐. 소위 ‘쪼아야’ 결과가 나온다니까. 사원들에게 미움받아도 때론 어쩔 수 없지 뭐.” “직급 높으면 편할 줄 알았는데, 나름 고충이 있구나. 그래도 사원이 더 힘들지. 결정권은 없고, 눈치는 보이고. 칭찬과 격려는 부족하고.” “관리자야말로 위아래에서 샌드위치로 치이는 데 누가 알아주나. 나도 성과로 평가받는 입장인데, 후배들에게 좋은 사람 되려다 성과 못 만들면 그냥 다 끝이야.”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기저기서 들었던 성토가 떠올랐다. 차장급 선배도 내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후배들과 상사, 양쪽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중간관리자가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 중 하나가, 시대가 변해서 후배들에게 일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도 어려운데 위에선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하니 중간에서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중간관리자는 억울하다. 후배들이 보기엔 상급자라서 누리는 게 많고 몸도 마음도 편해 보이지만 실제론 아래로부터는 후배들의 평가를, 위로부터는 성과 압박을 받는다. 싫은 소리 몇 마디 했다간 여론이 악화되고, 좋은 선배 되려고 참다가 카리스마 잃고 일은 혼자 다 하는 선배가 되어 있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럽고 답답하기만 하다..

중간관리자는 ‘리더’로서의 역할과 ‘서포터’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양쪽의 입장과 기대치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사원의 입장이다. 누구나 바라는 듯한 자율적인 환경을 만들어주었는데도 지시가 통하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일은 내가 다 했는데 성과는 동료나 상급자가 가져갔어요.” “열심히 해봤자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는데요. 열심히 해야 할 동기를 못 찾겠어요.” 같은 속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일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지 않거나 내 퍼포먼스를 주의 깊게 지켜보는 선배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의욕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상사가 중간관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본인이 지시한 큰 그림에 따라, 현장에서 세세하게 잘 지시하는 것이다. 아니 슈퍼맨도 아니고 어떻게 다 잘할 수 있나 싶다.

나는 위아래의 신뢰를 모두 얻은 선배들을 떠올려봤다. 그들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종합해보면 이렇다. 우선 기준이 확실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다. 중간관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후배들이 나를 물로 보는 것’ 아니겠는가. 카리스마도 잃고 일도 진척이 없는 상황 말이다. 카리스마는 고압적인 지시가 아닌 확실한 기준에 따른 평가와 피드백에서 나온다. 일한 만큼의 보상을 줄 것이라는 믿음, 사사로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성과를 평가해주리란 믿음 말이다. 또한 후배들이 나에게만 일이 몰렸다 느끼지 않도록 업무 분배를 수시로 살펴 조정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일의 공정함 못지않게 감정의 공정함도 민감한 부분인데, 상급자의 말 한마디가 갖는 파급력이 언제나 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기억하고 말에 개인적인 감정을 싣지 않아야 한다. 이런 신뢰가 기반이 됐을 때 후배들은 자발적으로 일할 동기를 갖게 된다.

다음은 ‘소통’ 능력이다. 후배들은 회사 상황이 궁금하다. 내가 모르는 어떤 변화와 상황들이 있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이럴 때 중간관리자가 상사의 생각을 후배들에게 확실히 전하면서 불안을 덜어주어야 한다. 상사와 나눈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감추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일하는 배경과 목적을 명확히 설명해 동력을 고취하는 것이다. 반대로 상사에겐 일이 진행되는 경과를 신속하게 보고하면서 현장의 의견과 고충을 전한다. 상사가 후배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과 한계를 갖는다는 걸 이해하고 일정 부분 해소해주는 것이다. 여기에 솔선수범하는 모습까지 보인다면, 권력만 누리려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호감형 관리자로 등극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포용력’이다. 이와 관련해선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따뜻함을 나누어준 선배가 떠오른다. 아무도 내 힘듦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때에 선배는 “현주야, 오늘은 이 부장이 눈감아줄게. 일찍 퇴근해서 푹 쉬렴.” 하며 슬픈 눈으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한마디가, 그 따뜻한 표정이 근본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큰 응원이 되었다. 다시 조직원으로 일어설 마음의 근력을 만들었다. 힘들어하는 후배는 없는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자신감이 떨어진 선후배에게 따뜻함을 보여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중간관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일’임을 기억하는 것, 그게 일이 되게끔 하는 기본이다.

임현주(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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