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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문기자 잡담]자라나라 머리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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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 불문하고 탈모에 신음하는 선수들

탈모 약은 도핑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부작용 우려해 피하는 경우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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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기 도중 머리카락이 돌연 이탈한 레인저스 윙 브랜든 바커./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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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지난 7일 독일 레버쿠젠 바이아레나에서 열린 2019-20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16강 레버쿠젠(독일)과 레인저스(스코틀랜드)의 맞대결에서 찍힌 것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레인저스에서 윙으로 뛰는 브랜든 바커(24·잉글랜드)로, 아직 젊은 선수지만 모근이 육신에 앞서 요절하는 바람에 옆머리를 길러 머리꼭지를 가려두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축구 경기에 격렬히 임하다 보면 아무래도 이처럼 고정해둔 머리가 풀려 흩날리기 일쑤다.

일부 네티즌은 이 사진을 보며 그가 도핑 문제 때문에 모발을 붙들지 못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탈모 약을 복용하면 도핑 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물 처방을 포기하고 빠지는 머리털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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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단정하게 정돈한 브랜든 바커./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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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아요 그대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지난 2005년 미국 식약청(FDA)이 승인한 탈모 약 중 하나인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를 도핑 검사할 때 스테로이드 성분 검출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금지약물 목록에 집어넣은 전력이 있긴 하다. 한국에선 ‘프로페시아’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바로 그 약이다. 하지만 FDA는 불과 4년 만인 2009년에 이를 다시 명단에서 제외했다. 기술이 발달한 덕에 피나스테리드 성분이 도핑 검사에 지장을 주지 않게 됐다는 이유였다.

다만 그 잠깐 동안에 피나스테리드로 인해 도핑 테스트에 걸린 선수가 적지 않았다. 브라질의 전설적인 공격수 호마리우(54)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지난 2007년 10월 도핑 검사 도중 피나스테리드가 검출되는 바람에 120일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는 “경기력 향상을 바란 것이 아니라 탈모 방지 차원에서 약을 먹었을 뿐이다”고 항변했지만, 아무튼 금지된 약물을 투약한 것만큼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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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호마리우./Vbe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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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스페인 프로축구 세군다리가(2부 리그) 그라나다74에서 뛰던 보르하 크리아도(38·스페인)나 독일 2. 분데스리가(2부 리그) 1860 TSV 뮌헨 선수 네마냐 우치체비치(41·세르비아), 호주 국가대표 출신인 스탄 라자리디스(48), 뉴질랜드 테니스 선수 마크 닐센(43) 등이 머리털을 지키고자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했다가 도핑 테스트에서 덜미를 잡혔다. 이처럼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도 피나스테리드 때문에 도핑 논란을 겪은 선수가 많기 때문에, 아직도 탈모 약 복용을 곧 도핑으로 기억하는 스포츠 팬들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는 WADA는 물론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도 이미 피나스테리드를 허용하고 있다. 아보다트나 로게인(미녹시딜) 등 여타 탈모 관련 약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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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핑방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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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꺼림칙한 그대에게

이 때문에 요즘엔 개의치 않고 탈모 약을 먹는 선수도 흔하다. 체력과 근력 유지를 위해 육류 위주로 식단을 짜는데다 강한 자외선도 많이 받아 머리가 비교적 쉽게 벗겨지는 축구 선수들은 탈모 방지에 더욱 신경을 쓰는 편이니, 바커 역시 어쩌면 약을 복용했음에도 그저 투약 시기가 늦어 저지에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도핑과 무관한 이유를 들어 탈모 약 복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 전(前) 감독인 아르센 벵거(71·프랑스)가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지난 2014년 4월 영국 매체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머리가 빠져 탈모제 약을 복용했다면 나머지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약은 때론 치료하는 지점 외 다른 부위에 해를 줄 수 있다. 예컨대 약물은 간에 무리를 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독소가 잘 빠져나가지 않아 피로가 쉽게 쌓인다. 당연히 부상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며 회복도 늦어지기 마련이다”고 했다. 그의 주장이 의학적으로 타당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이러한 믿음 때문에 그가 탈모 약 복용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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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만큼은 언제나 풍성한 아르센 벵거./아스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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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지 않는다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가발 착용인데, 활동이 많거나 움직임이 큰 종목에선 그 또한 적절한 방책이 되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 2017년 6월에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다이아몬드 리그 오슬로 대회 여자 멀리뛰기 결승 1차 시기에 출전한 블레싱 오카그바레(32·나이지리아)는 착지하는 순간 가발이 벗겨지는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그의 몸은 총 6m40㎝를 날았으나, 심판진은 그의 가발이 떨어진 지점인 6m21㎝를 기록으로 인정했다. 출발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남은 신체 흔적을 기준 삼는 규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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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붉은 원)이 오카그바레(노란 원)에 앞서 떨어진 모습. 기록은 가발의 착지점을 기준으로 인정됐다./유튜브 채널 'Wanda Diamond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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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방법으로는 모발 이식이 있다. 선수 때는 아니었지만, 리버풀 감독 위르겐 클롭(53·독일)은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를 맡았던 시절 모발 이식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 휘하 선수였던 마리오 괴체(28·독일)에게 “너도 몇 년 있으면 모발이식 전문의 전화번호가 필요할 테니 내가 잘 저장해 두겠다”고 말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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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마리오 괴체./마리오 괴체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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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풋볼 리그 챔피언십(2부 리그) 더비 카운티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는 웨인 루니(35·잉글랜드)도 모발 이식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5살 무렵이던 2010년 즈음부터 이미 모발이 눈에 띌 정도로 확연하게 탈락해 있었다. 영국 매체 더선은 지난 6월 “루니는 2011년에 모발 이식을 받았고, 이 수술에만 3만 파운드(약 4600만원)를 썼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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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루니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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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1998 프랑스 월드컵 때 야신상을 받은 레 블뢰 군단의 수문장 파비앵 바르테즈(49·프랑스)도 탈모는 막지 못했듯, 인간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루니 또한 달아나는 머리를 돈으로 저지할 순 없었다 한다. 만인류에 적용 가능한 획기적인 치료 방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고액 연봉을 받는 유능한 선수라도 결국엔 탈모 고민을 벗어나긴 어렵다는 것이다. 더선은 “루니가 최근 다시 탈모를 겪는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경기에 출전할 때엔 스프레이(흑채)를 뿌린다는 의혹이 있다. 머리털이 다시 빠지기 시작한 루니지만 턱수염만큼은 누구보다도 풍성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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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파비앵 바르테즈./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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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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