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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부여 가림성에서 통일신라·조선시대 집수정 2기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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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시대 우물은 원형, 조선 시대는 원형

CBS노컷뉴스 권혁주 기자

노컷뉴스

부여 가림성 집수정 전경(사진=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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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거점산성인 충청남도 부여의 가림성에서 통일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에 사용됐던 집수정(우물) 2기가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13일 부여군과 백제고도문화재단과 함께 추진 중인 ‘부여 가림성(사적 제4호)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에 사용되었던 집수정 2기를 최근 확인했다고 밝혔다.

집수정은 성내에 식수 등의 물을 모으기 위한 우물이다.

부여 가림성은 삼국사기에 501년(백제 동성왕 23년)에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백제 시대 성곽 중 유일하게 연대와 당시의 지명을 알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부여 일대의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과 함께 사비도성을 보호하는 거점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확인된 조선 시대 집수정은 길이 4.9m, 너비 4.5m, 깊이 2.3m에 평면은 방형(사각형)의 형태로, 내부에서 조선 시대 분청사기 조각과 기와 조각, 말머리 토우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조선 시대 중기에 축조되었다가 가림성이 폐성되는 17~18세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성벽에서 조사된 수구지와 함께 조선 시대 성내 배수체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수구지는 성내의 물을 흘려 내보내기 위한 시설물이다.

통일신라 시대 집수정은 조선 시대 집수정의 하층과 가림성 북성벽 사이에서 확인됐다.

길이 15m, 깊이 2.8m 이상의 크기로 평면은 원형을 띄고 있으며, 물을 가운데로 모으는 집수정과 그 외곽에 돌로 축조한 물을 차단하는 시설과 배수를 겸한 수로가 돌아가는 형태였다.

문화재청은 내부와 주변 토층 조사를 통해 집수정의 최초 축성 시기와 축조 방식을 명확히 밝일 예정이라고 전했다.

가림성은 1996년 동문지와 남문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2011년, 2015년~ 2018년까지 총 6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지금까지 동문지와 남문지의 축조 형태와 백제 시대 성벽 축성법, 백제~조선 시대 개축한 성벽 흔적, 조선 시대 수구지, 정상부의 평탄지에 자리한 건물지 등이 확인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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