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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빈과일보 사주, 편집국 찾아가 "어떤 압박도 버텨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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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으로 체포됐다가 12일 0시 보석으로 풀려난 지미 라이(黎智英) 빈과일보 사주는 이날 정오 홍콩 동부 정관오에 있는 빈과일보 본사로 출근했다. 이틀 전 경찰에 연행돼 수갑을 차고 끌려왔던 그가 편집국으로 들어서자 직원들은 일제히 손뼉을 쳤다. 라이 회장과 같이 체포됐던 보석으로 풀려난 킴훙 청(張劍虹) 넥스트 디지털(빈과일보 모회사) 대표가 꽃다발을 건넸다. 라이 회장이 짧은 연설을 했다.
“빈과(일보)는 분명히 버텨낼 수 있습니다. 어떤 압박을 받아도 모두 버텨내야 합니다. 각자 산을 오릅시다. 계속 오릅시다.”

영미권 매체들은 올해 72세인 지미 라이를 “홍콩 언론 자유의 상징”이라고 부른다. 홍콩에서 발행량 2위의 빈과일보 등을 보유한 미디어그룹 ‘넥스트 디지털’사(社)의 설립자이자 최대 주주다. 트위터 팔로어(구독자)가 10만명인 소셜미디어 스타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그를 “홍콩 혼란의 검은 손” “CIA(미 중앙정보국)의 첩자”라고 부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3일 라이 회장에 대해 “홍콩을 팔아넘기려는 리즈잉(지미 라이의 중국 이름)은 외부 세력의 대리인이며, 자신의 매체를 이용해 오랫동안 홍콩 정부와 법치를 공격해 왔다”며 “세기(世紀)의 매국노”라고 했다. 라이 회장은 현재 협박, 불법 집회 조직, 참여 등 총 7가지 혐의에 대해 재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 지난 10일 홍콩보안법 위반(외국 세력과 결탁죄), 사기 공모, 선동(煽動) 등의 혐의가 더해졌다.

라이 회장은 1948년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화물선 6척을 가진 부유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1948년 광저우가 공산화되면서 부친은 홍콩으로 피신하고 어머니는 노동 개조를 받으러 다녔다. 5살 때부터 쓰레기를 주워 입에 풀칠했고, 좀 더 커서는 암시장에서 라이터 등을 팔거나 광저우 기차역 앞에서 짐을 날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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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됐던 지미 라이 넥스트디지털 회장이 12일 0시 보석으로 풀려난 후 지지자들을 향해 두 엄지를 들고 있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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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이 되던 해 라이 회장은 홍콩 돈 1달러를 들고 아버지가 있는 홍콩으로 밀항했다. 홍콩 삼수포이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며 혼자 생활했다. 가발공장, 의류 회사에 들어가 하루 16시간씩 일했다. 라이 회장은 “너무 오래 일하다 보니 다리에 힘을 풀려 서서 소변을 보기조차 어려웠다”고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1981년 한국에도 알려진 의류브랜드 ‘지오다노’를 설립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 여행 때 본 피자집 이름을 땄다고 한다.

라이 회장은 12살 때부터 영어를 독학했다. 20대에는 미국 출장을 다니며 영문 서적을 읽을 수준이 됐다. 이해가 안 되면 몇 번이고 읽었다고 한다. 특히 사회주의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포퍼 책에 매료됐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책장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여러 번 읽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인 지미 라이를 정치에 눈을 뜨게 한 것은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였다. 당시 베이징 천안문에서 정치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중국군이 총을 쏘자 홍콩에서도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그는 지오다오 옷 공장에서 “내려오라. 우리는 분노했다”라고 적인 티셔츠를 만들어 시위대에 나눠줬다.

1990년에는 언론 사업에 뛰어들었다. 넥스트미디어(넥스트 디지털의 전신)를 세워 ‘일주간’이라는 잡지를 발행했다. 선정적인 연예계 소식과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뒤섞인 잡지였다. 천안문 사태와 관련, 리펑 당시 중국 총리를 맹비난하는 공개서한을 게재하기도 했다. 후폭풍은 거셌다. 라이 회장은 미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당시 리펑 비난 기사로 중국 본토에 있는 지오다오 매장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3억2000만달러에 사업을 처분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건으로 “장사꾼은 정권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가 언론에 올인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지미 라이가 1995년 창간한 빈과일보는 미국 ‘USA 투데이’처럼 사진과 대형 그래픽 중심의 ‘보는 신문’을 지향했다. 당시 홍콩 신문의 절반 가격에 파는 ‘저가 전략’도 폈다. 여기에 연예계 스캔들과 중국·홍콩 정부는 비판하는 ‘탐사보도’를 섞어 영향력을 확대했다. 대만에도 빈과일보를 세워 영향력을 키웠다. 그즈음부터 “아시아의 루퍼트 머독(월스트리트저널 등을 보유한 언론재벌)”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천주교 신자인 라이 회장은 천주교 홍콩교구, 홍콩 야댱인 민주당과 공민당을 후원하고 있다. 빈과일보에도 공익재단을 만들어 각종 사회단체를 지원했다. 중국 정부가 라이 회장에 대해 “반중 세력의 돈줄”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시위, 2019년 범죄인 인도법(홍콩인 범죄자를 중국 등으로 보낼 수 있는 법) 반대 시위 최전선에서 서기도 했다. 이런 경력 때문에 중국은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고, 살해 위협, 화염병 공격 등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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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한 홍콩 시민이 지미 라이 넥스트 디지털 회장의 체포 소식이 실린 빈과일보를 들고 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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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을 연일 비판했다. 최근까지도 “중국 공산당이 홍콩을 세계로부터 고립시킨다” “중국이 코로나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그게 중국공산당의 본성이다.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법이 없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홍콩 문제를 논의했다.

지난 6월 30일 시행된 홍콩 내 반중 세력을 감시·처벌하는 홍콩보안법이 통과되자 라이 회장은 체포 1순위로 꼽혀왔다. 그는 6월 18일 AFP통신 인터뷰에서 “감옥에 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라고 부르면서도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 10일 라이 회장에 반중 단체에 자금을 지원한 혐의 등으로 체포되자 시민들은 소셜미디어에 “라이를 풀어줘라”는 글을 올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빈과일보를 샀다. 평소 7만~10만부를 찍던 빈과일보는 11일에만 55만부를 발행했다. 12일 0시 보석으로 풀려난 라이 회장이 경찰서를 나왔을 때도 지지자들은 빈과일보를 들고 그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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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라이 넥스트 디지털 회장이 12일 정오 홍콩 정관오에 있는 빈과일보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12일 0시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귀가 후 맨먼저 신문사부터 찾았다./봉황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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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이 회장이나 빈과일보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빈과일보 모회사인 넥스트디지털은 언론 시장 불황으로 경영 상태가 악화되면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1% 감소하고 영업 적자는 23% 가까이 증가했다. 반중 성향의 신문에 기업들이 광고를 하기 꺼리면서 빈과일보 1면에는 성인용품 광고, 소규모 식료품점 광고가 실린다. 또 법원이 라이 회장의 자산을 동결하고 빈과일보 직원들이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만 라이 회장은 아직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보석 직후 12일(현지시각) 영국 BBC 인터뷰에서 “구속돼 있는 동안, 이런 시련이 닥칠 줄 미리알았더라도 홍콩 민주화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다”며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이게 바로 나” 라고 했다. 12일 신문사로 출근했던 라이 회장은 그날 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누군가 보내준 최고의 아첨”이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에덴의 선악과(사과)는 인간의 추락과 원죄, 구원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뉴튼의 사과는 자연의 법칙, 우주의 비밀을 드러냈고, 스티브 잡스의 사과는 사람 사이 연결의 방식을 바꿨다. 지미 라이의 빈과일보(빈과는 사과라는 뜻)는 정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홍콩인의 불굴의 정신,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본보기다.”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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