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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해외칼럼] 실직자 위기 외면하는 美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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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긴급 '근로세 인하' 내밀었지만

일자리 없는 노동자들엔 무용지물

'실직=도덕적 해이' 취급하는 공화

수백만 미국인 빈곤위기로 몰아넣어

서울경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아직도 우리 곁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일 1,000여명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는다. 사망률이 유럽연합(EU)의 10배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통제에 실패한 탓에 우리는 대공황 당시와 유사한 수준의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다. 때 이른 경제활동 재개 시도로 경기가 잠시 반등하는 듯했지만 팬데믹 재확산에 봉쇄해제 조치를 일시 중단하거나 아예 거둬들이는 주들이 늘어나면서 경제는 또 멈췄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수천만 미국인들에게 생명선 역할을 했던 추가 실업수당마저 시한 만료로 지급이 중단됐다. 하지만 추가 실업수당의 연장 여부와 규모, 지급 방법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 협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이미 두 달 반 전에 본회의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백악관과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원은 대체법안을 상정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추가 실업수당 만료일이 코앞에 닥칠 때까지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공화당의 팬데믹 대응 실패는 ‘무지한 악의’일까 ‘악의적 무지’일까.

팬데믹을 억제하기 위한 경제봉쇄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서비스업종이었다. 필수 불가결한 업종이 아닌데다 코로나19 확산을 부채질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두루 갖고 있다는 우려로 요식업과 항공운수업 등이 직격탄을 맞으며 서비스업종 전반에 실업 쓰나미가 몰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정책의 주된 목표는 일시적 경제봉쇄를 견뎌낼 수 있도록 실직자들이 일정 수준의 소득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백악관 보좌관들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잠꼬대 같은 정책안을 입에 올린다.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들에게 근로세 인하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마티니를 곁들인 사업가들의 호화로운 점심식사 대금을 과세대상액에서 전액 공제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들은 실업수당 지급방식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공화당은 여야 간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단기적으로 추가 실업수당 지급을 연장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실업수당 지급창구인 주 정부는 여기에 필요한 시스템 재프로그래밍을 처리할 만한 능력이 없다.

무엇보다 공화당은 실업수당이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을 꺾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일을 안 해도 생계소득이 보전되기 때문에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설사 실업수당이 실제로 취업의욕을 다소 감소시키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들의 주장은 지나치다. 실업수당을 받는 근로자가 3,000만명 이상인 데 비해 일자리는 고작 500만개에 불과하다. 실직 노동자들을 제아무리 닦달하고 가혹하게 대해도 있지도 않은 일자리를 잡을 수는 없다.

추가 실업수당은 7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 일자리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받던 정상적인 봉급보다 더 많은 실업수당을 수령한 실직자들에게 돌아간다. 한편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추가 실업수당이 소비자 지출을 늘림으로써 경제 전반을 떠받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실직자 지원에 대한 공화당의 공격은 심각한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공화당은 오랫동안 실직을 도덕적 해이와 결부시켰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일하는 것보다 집에 앉아 TV를 보면서 빈둥대기를 즐긴다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집권 이후 오바마케어에서 푸드스탬프에 이르기까지 저소득층 지원 프로그램을 겨냥한 무자비한 공세를 펼쳤다.

공화당의 엉큼한 속내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로 실직자 지원이 국가 부채를 과도하게 확대한다고 주장하는 ‘적자 매파’의 갑작스러운 재등장을 꼽을 수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실직자들을 지원할 만한 재원이 없다며 반대의견을 내는 공화당 의원 중 대기업들을 위한 2조달러 규모의 트럼프 감세안에 반대한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공화당이 곤경에 처한 미국인들을 돕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가 불운한 근로자들에 대한 그들의 뿌리 깊은 경멸감 때문만은 아니다. 베니티 페어 최근호는 미국이 전국적인 차원의 진단검사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이유는 공화당이 코로나19가 민주당 강세 지역인 이른바 ‘블루 스테이트’에 국한된 문제라 믿고 늑장대응했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숱한 증거를 제시한다.

현시점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추가 재앙을 피할 방책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조만간 경제적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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