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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최원석의 디코드] ‘도요토미의 역습’과 수소차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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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코드(decode): 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쉽도록 풀어내는 것. 흩어져 있는 뉴스를 모아 세상 흐름의 안쪽을 연결해 봅니다. ‘뇌피셜’이 넘쳐 죄송합니다!

소설책 한 권이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화제입니다. 작년 말에 나온 '도요토미의 역습: 소설·거대자동차기업(トヨトミの逆襲: 小説・巨大自動車企業)'이라는 책 입니다. 여기서 말한 '도요토미'는 말할 것도 없이 도요타자동차(Toyota)의 창업자 가문인 도요다(豊田)를 지칭합니다. 실제 인물을 등장시켜 책을 쓸 수 없으니, 기업소설인 것처럼 쓰되 등장인물과 이야기는 실제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 이 책은 2016년에 나온 '도요토미의 야망'의 속편 격인데요. 가지야마 사부로(梶山三郎)라는 가명을 쓰는 일종의 '복면작가'가 기업소설 형식을 빌어 도요타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현재의 위기와 과제에 대해 오랜 취재와 그간 쌓인 인사이트를 동원해 거대한 '뇌피셜'을 풀어냈습니다.

2016년에 ‘도요토미의 야망’이 나온 뒤 도요타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곧바로 저자 색출 작업에 들어갔는데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옛날에 자동차 업계에서 굵직한 특종을 날리는 것으로 유명했고, 취재를 넘어 업계 구도에까지 관여하려 했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출신의 한 베테랑 언론인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이 책은 도요타 본사가 위치한 아이치현에서는 금서(禁書)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읽을 사람은 다 읽었다는군요. 이 책에 관해 도요타에 대해 잘 아는 업계 관계자들 중에는 “소설의 내용이 99% 사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선일보

도요타의 위기와 미래를 그린 기업소설 '도요토미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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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해 2016년 출간된 ‘도요토미의 야망’ 얘기를 잠깐 해보죠. 이 책은 도요타의 경영권을 둘러싼 창업가 도요다 쇼이치로(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의 아들), 도요다 아키오(창업자의 손자, 쇼이치로의 아들) 쪽과 비(非)창업가문 출신으로 사장까지 오른 오쿠다 히로시의 대립을 다루고 있습니다.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이지만 도요타를 아는 사람이라면, 가명의 실제 인물이 누구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디테일한 내막을 알게 됐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요.

오늘의 주제. 최근 나온 속편 ‘도요토미의 역습’이라는 소설과 수소연료전지자동차(이후 수소차)의 미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도요토미의 야망’이 도요타의 그간의 권력 암투 과정을 역사드라마처럼 엮었다면, ‘도요토미의 역습’은 도요타의 위기의 내막과 미래에 대해 묻습니다. 그러면서 작년까지 영업이익만 연간 30조원 가까이 꾸준히 내온 초우량기업 도요타의 전략과 미래에 대해 ‘이대로 좋은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지요.

◇도요타의 위기와 미래 다룬 기업소설 ‘도요토미의 역습’, 일본 업계에서 화제와 논란

소설은 도요토미자동차(실제로는 도요타자동차)의 사장인 도요토미(도요다 아키오 현 도요타 사장)가 하이브리드카 ‘프로메테우스(프리우스)’ 이후에 발표한 수소차의 보급에 실패하면서, 전기차 개발로 급선회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도요토미자동차는 수소차를 고집하다가 전기차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기에 빠졌다고 판단, 뒤늦게 전기차 개발에 올인합니다. CASE 즉 커넥티드(Connected),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ed), 전기차(Electric)이라는 4개 기술의 큰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지요. 테슬라가 일본 자동차 업계에 가져온 충격이 얼마나 큰지, 또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수소차 전략에 올인하다가 중간에 전기차로 방향을 트는 과정에서 도요타 산하의 부품업체들과 벌어지는 갈등과 반목, 소프트뱅크 같은 IT 업체와의 제휴 등, 현실과 뇌피셜을 넘나들지만 사실에 기반하거나 혹은 사실감 있는 내용들이 이어집니다.

소설이 주장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도요타가 수소차에 올인하다 실패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테슬라에 제대로 대응해야 하고, 전기차와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자동차 분야의 소프트웨어·운영체제(OS) 경쟁에 전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소차로 세계를 제패한다는 전략을 고집하다가는 도요타는 물론 일본 자동차사업 전체의 미래가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이게 소설의 뇌피셜에 불과한지 알아보기 위해 일본의 업계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보았는데요. 문의 결과 ‘수소차 관련해서는 위기가 맞다’는 쪽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쓴 사람의 의견이 옳은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 사람이 일본 자동차 업계를 궤뚫어보고 있을만큼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고, 도요타나 일본 자동차업계에 깊은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는 상당 부분 동의했습니다.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물론 일개 소설이긴 하지만, 일본 업계에 가장 정통한 ‘기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가공의 그러나 실화에 가까운 이야기를 통해 일본 자동차 업계의 현실을 얘기한 내용에서, ‘도요타의 수소차 전략은 실패’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수소경제와 수소차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여기에 역량을 쏟아부을 기세인데 말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잠시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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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차기 수소전용 트럭 '넵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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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펴보면, 현재 수소차에 대한 제대로 된 양산 계획을 내놓고 있는 업체는 전세계에서 도요타와 현대차 뿐입니다. 혼다도 하고는 있지만 생산을 늘릴지 의문입니다. 최근에 화제인 니콜라모터스의 경우 아직 실체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요.

수소차 개발 역사가 가장 길고 기초기술의 축적도 가장 많았던 GM은 현재 수소차 대신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고요. 벤츠는 작년에 지난 26년간 개발해 왔던 수소차 ‘네카’의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벤츠 등이 수소차 개발을 포기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기술 자체는 유망하지만, 지금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 집중해야 할 것은 아니다. 한정된 자원의 투입 순서에서 전기차·자율주행 등이 더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풀어 얘기하자면 ‘일단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에 자원을 집중한다, 수소차는 관련 기술을 가진 부품 기업들이 북미·유럽에도 있고, 이를 활용해 나중에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집중할 타이밍을 나중으로 잡겠다’는 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이 발표한 로드맵을 보아도, 수소경제에서 수소차의 비중은 아직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수소를 유럽에서 나오는 그린에너지의 저장·운반체계로 보고, 그런 에너지기반을 구성하는 인프라를 갖추겠다는 것이 핵심인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도 로드맵을 발표하고, 수소 물분해 생산장치, 수소연료전지장치, 특히 신재생에너지와 연결해 대량으로 물분해를 해 수소를 만들어내는데 필수인 담수화장비 등에서 세계 1등이 되겠다고 발표를 했는데요. 여기에 수소차는 그리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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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자동차와 도요타의 상용차 자회사인 히노가 공동개발중인 수소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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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재 수소차의 양산 경쟁은 당분간 도요타와 현대차의 싸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이 수소차로 기술을 선도하고 부를 일구는데 성공하려면, 국내 기반은 기술축적을 위해 키우되, 결국에는 이를 기반으로 대량 수출하는 지금까지 한국 기간산업의 발전 구조를 재현해 내는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우선 수소차의 경우 트럭이 됐건 승용차가 됐건 해외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요. 현대차가 이미 15년간 수소차를 개발해오면서 관련 기술을 축적해 글로벌 톱클래스의 기술력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해외의 정부·기업과 연계해 큰 수요를 따내지 못하면 국내 수요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 수소차나 수소연료전지 관련 기술개발은 아직도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기술의 우위보다는 누가 시장을 장악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내느냐 관건이라는 얘기입니다.

즉 수요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그것도 나중이 아니라 가까운 시일 내에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성공을 가늠하는 거의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수요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겠지요.

◇일본 내에선 도요타의 수소차 전략이 실패했다는 비판론도

수요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한국에 가장 큰 위협은 도요타·중국 연합입니다. 도요타는 중국 5개사와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합작회사를 연내에 설립한다고 최근 닛케이신문이 보도했습니다. 도요타가 65%의 지분을 갖고, 칭화(淸華)대, 그리고 베이징·제일·둥펑·광저우자동차 등 중국 4개 대표 자동차기업이 각각 5~15% 지분을 출자합니다. 합작회사가 개발한 수소차 시스템은 2022년까지 중국의 트럭·버스에 제공된다고 합니다. 중국은 전기차·수소차 등을 ‘신에너지차’라 부르는데, 2025년까지 신에너지차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도요타는 올 연말 자사의 수소차인 ‘미라이’ 2세대 모델을 내놓는데, 고급 대형세단에 얹어 소비자들에게 ‘친환경차+럭셔리카’의 이미지로 승부할 계획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원가 경쟁력인데요. 현대 수소차인 넥쏘의 원가가 7000만원 정도로 추정되는데 도요타의 경우 넥쏘 동급의 원가를 2세대에서 5000만원 이하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량 보급에서는 원가경쟁이 생명이지요. 원가를 낮추지 못하면 보급을 하면 할수록 큰 폭의 적자가 쌓여, 결국엔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요타는 이 외에도 도요타의 자회사이거나 도요타와 자본을 제휴한 히노·다이하쓰·스즈키·스바루·마쓰다 등 연산 1600만대 기업 연합을 통해 연료전지 수요를 더 넓히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고요. 독일 BMW도 도요타에서 연료전지시스템을 공급 받을 예정입니다. 2022년 BMW X5 수소차 모델이 도요타 시스템을 달고 출시된다고 합니다.

◇현대와 도요타의 싸움, 결국 해외수요 누가 확보하느냐가 승부의 관건

일단 수요확보 경쟁에서 도요타의 기세가 엿보이는군요. 그러나 이보다 더 복잡한 문제는 지금 수소차를 하긴 하되, 당장 크게 벌이는 것이 옳을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있고, 과거에 한국이 벤치마킹했던 일본과 도요타, 그리고 일본의 업계에서도 수소차 확대 전략에 대한 의문과 위기 의식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기차냐 수소차냐 선택의 문제는 전혀 아닙니다. 특히 장거리용 트럭 등의 경우 수소차의 장점이 분명히 있지요. 즉 전기차·수소차가 함께 가긴 하겠지만, 그러나 문제는 수소차가 언제쯤 어느정도 규모로 보급될 것인가인데요. 이 부분에서 큰 승부와 가능성과 의문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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