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김광일의 입] ‘조국 백서’에 드러난 집권 세력의 본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확진자 2천만 명을 넘어서는 코로나19 사태, 그 끝은 어디인가, 그리고 이번 주말까지 비 소식이 계속되는 사상 최장(最長)의 장마와 그 피해, 온 국민의 분노 게이지를 한껏 높이고 있는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윤석열 검찰총장을 완전 고립무원 속에 가둬두려는 청와대와 법무부의 인사 횡포, 이런 뉴스를 전달하고 해석하느라 정말 8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 사이에 그냥 지나쳐온 뉴스가 있었다.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국 백서’가 발간됐다는 점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일가족에 얽힌 온갖 비리 의혹에 대해 조국 지지자들의 후원금을 모아서 만든 총괄 보고서가 이른바 ‘조국 백서’다. 백서(白書, white paper)란 원래는 정부가 특정 사안이나 주제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를 정리해서 보고하는 책자다. 영국 정부가 만들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의 표지를 하얀색으로 했던 데에서 명칭이 생겼다. 지금은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두루 쓰이는 말이 됐다.

지난 8월5일 나온 이 ‘조국 백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조국 씨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검찰 쿠데타"로 규정했다. 검찰 수사가 정치적 목적에서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지금 보여드리는 것처럼 제목부터가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라고 돼있고, 부제는 ‘조국 사태로 본 정치검찰과 언론’이다. 표지에 있는 제목에서부터 ‘정치검찰’이라고 못 박아 놓았다.

560쪽 분량 백서에는 김민웅, 전우용, 김지미, 고일석, 박지훈, 김유진, 이종원, 임병도, 최민희, 김어준, 김남국 씨 등이 참여했다고 한다.

조국백서추진위는 ‘조국 백서’ 제작을 위해 제작비 3억원을 모아 한때 논란이 일었다. 조국 전 장관을 적극 옹호해온 소설가 공지영 씨조차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지적한 적도 있다. "조국백서 발간하는데 무슨 3억이 필요? 그냥 만들어 책으로 팔면 될 텐데 또 모금?"이라며 "이 ‘조국백서’라는 책은 돈 받아 만들고 만든 후 수익은 누가? 진보팔이 장사라는 비난이 일어나는 거 해명해주시길." 당초 ‘조국 백서’는 지난 3월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논란 끝에 5개월이나 늦게 출간됐다.

‘조국 백서’는 발문(跋文)에서 이번 사태를 "검란(檢亂)으로 표현된 사태,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검찰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여러분께서 예상하실 수 있었던 표현들이 죽 나온다. 가령 이렇다. "정치검찰의 기획은 대단히 교묘했다" "증거 없는 폭로가 난무했고 의혹 제기만으로 검증 절차 없이 확증됐다" "이성이 정밀하게 움직인다면 용납될 수 없는 여론 조작"…. 막상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부분적으로 수긍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전체적으로 기가 막힐 뿐이십니까.

조국 전 장관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 ‘백서추진위’의 수고에 감사하다"면서 "작년 하반기 서초동의 촛불을 생각하며 지금부터 읽겠다"고 했다. 다만 "저는 이 백서의 집필과 편집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국 백서’는 4부로 이뤄졌다. 1부 ‘총론- 조국 정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부 ‘검란-조국 사태와 정치검찰’, 3부 ‘언란-조국 사태와 언론’, 4부 ‘시민의 힘’ 등이다. 이는 당시 검찰 수사를 ‘검란(檢亂)’으로, 언론의 의혹 제기를 ‘언란(言亂)’으로 본 것이다. 여러분도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실 겁니다. 워낙 정파성(政派性)을 갖고 진영 논리에 따라 쓴 글들이라서 혼란을 느낄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사실 여부나 진실 확인과는 관련 없는 일방적 규정이고 주장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 대목이 있었다. 백서는 조 전 장관 딸의 입시 문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언론 매체들은 불공평과 불공정 모두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불공평한 상황은 조국 후보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계층구조와 입시제도가 만든 것이다." "조 후보자 딸이 논문 제1 저자가 되는 과정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조직돼 학생의 ‘스펙’에 작용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제의 핵심은 학부모와 학생 개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매개로 맺어지는 연줄이다." 네, 한마디로 요약하면 조국 씨 딸의 문제는 ‘조국 부부와 그 가족들의 도덕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특목고를 매개로 한 연줄, 사회계층구조, 입시제도 탓’이라는 것이다. 더 줄여 요약하면, ‘조국 씨 잘못이 아니라 이 사회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고개가 끄덕여지십니까. 아니면 가슴이 턱 막히면서 할 말을 잃으셨습니까. 현 집권 세력들이 그동안 보여 온 ‘내로남불’과 그 바탕에는 어떤 의식 구조가 흐르고 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십니까.

이어서 ‘조국 백서’에서 가장 기가 막혔던 부분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조 전 장관이 ‘위선적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수많은 개혁주의자가 많건 적건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드러냈다." "어느 시대나 반개혁 세력은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문제 삼아 개혁 세력을 위선적이라 비난했다." "예로부터 지배 세력 내 개혁운동가들은 한편으로 자기 존재 자체에 주어진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런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어안이 벙벙하십니까. 조국 씨가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겪었다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저는 백서의 필진 중에서 누가 이 대목을 썼는지 알고 있다. 이 주장은 한마디로 ‘존재’, 즉 조국 씨가 웅동학원 집 큰아들로 태어났다는 집안 환경,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유복한 자식이라는 조건, 이런 것을 말한다. ‘의식’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조국 씨가 80~90년대 ‘사노맹’, 즉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그의 사회주의 좌파 이념을 말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부잣집에서 태어난 좌파운동가’라는 상황을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라고 한 것 같다. 즉 ‘강남 좌파’를 말한다. 그것을 옹호한 것이다.

자, 오늘부터 온 나라의 범법자들, 좀도둑, 성범죄자, 폭력 범죄자, 사기범 할 것 없이 모두들 말할 수 있다. 재판정에서 "나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겪고 있다"고 말하라. 저는 최근 우리나라 최고 권위를 가진 정신과 의사와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주장에 대해 물었다. 한 마디로 말했다.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그건 ‘정신 분열’이라는 뜻이다." 자, 그래서 묻는다. 조국 씨를 옹호하는 지금 정권은 정신 분열을 겪고 있는 중인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뜻인가. 그래서 고교생 딸내미를 대학 의학 논문 제1저자로 기재한 어이없는 파렴치 행위도 개혁주의자가 겪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일 뿐인가.

자신들은 아파트를 여러 채 갖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는 모두 팔라고 강요하는 저들의 행태,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라고 하면 금세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자신들의 자식들은 특목고·외고 보내면서 국민들에게는 불필요하다며 자사고를 모두 폐지하려는 저들의 행태,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라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원전을 폐지하여 탈원전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외국에는 한국산 원전을 팔고 있는 행태도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라고 하면 수긍이 되지 않습니까. 이번 ‘조국 백서’는 문재인 정권의 여러 행태를 한 번에 설명해주는 아주 기가 막힌 책인 것 같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