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6 (목)

“시간 얼마없다 생각하니 알겠더라…구질구질한 삶 인정하는 게 어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허지웅 새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

항암 치료 뒤 달라진 생각들 고백

“혼자 사는 건 불가능, 함께 살아야”

중앙일보

에세이집을 낸 허지웅씨는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이 요즘의 관심사“라고 했다. 장진영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8년 악성림프종 판정 후 지난해 항암 치료를 마치고 복귀한 작가 겸 방송인 허지웅(41)이 새 에세이집 『살고 싶다는 농담』(웅진지식하우스)을 펴냈다. 전작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에 이어 4년 만의 에세이집이다. 책이 출간된 12일 서울 용산구 서점에서 그를 만났다.

책 제목 의미부터 물었다. “되게 아팠을 때 간호선생님을 계속 부르기가 미안해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했다. 다음에 책 내면 (제목을) ‘살려주세요’ 해야겠다고 농담했는데….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 다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뭔가 공감할 수 있는 종류의 반어가 아닐까 싶다.”

책엔 암 투병 초기 스스로 죽음 직전까지 걸어 들어갔던 ‘그날 밤’의 고백부터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다짐,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주고팠던 위로까지 솔직한 마음을 새겼다. 그는 “독자들이 두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로 “살아라, 같이 살아라”란 말이다.

Q :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썼는데.

A : “그 문장이 이 책의 동기다. (암이) 재발률이 꽤 높다. 처음 책을 시작할 때 마음이 급했다. 제가 책에 ‘그날 밤’이라고 표현한 힘들었던 순간에, ‘그 밤에 먹히지 않고’ 지나쳐내면서 아, 이렇게 막다른 길에 몰린 다른 사람에게 해줄 얘기가 있는데 이걸 다 못 털어낼까 봐, 시간이 부족할까 봐 서둘러 썼다.”

Q : 재발하면 치료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도 했다.

A : “항암 해본 모든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Q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이 무엇을 가장 크게 바꾸나.

A : “삶을 바라보는 태도. 태어났으니까 억지로 사는 것 말고, 힘들어 죽겠는데 하루하루 빨리 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고, 내 삶을 내 의지에 따라서 살아나간다는 감각. 100명의 독자 중 한 명이라도 이 글을 통해 그 감각을 익히고 살아간다면 저자로선 다 이뤘다.”

‘불행이란 설국열차 머리 칸의 악당들이 아니라 열차 밖에 늘 내리고 있는 눈과 같은 것이다’ ‘절망이 여러분을 휘두르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나는 당신이 얼마든지 불행을 동기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가 몸소 겪고 써내려간 문장들은 굳어진 어깨를 부드럽게 도닥이는 바람 같다. 영화 기자로 시작해 ‘썰전’ ‘마녀사냥’ ‘SNL코리아’ ‘미운 우리 새끼’ 등 방송을 거치며 정치·사회부터 영화와 연애 문제까지 거침없이 비판하던 시절과는 어조가 다르다.

“어렸을 땐 뜨거웠다. 글이든 방송이든 거대담론을 건드려서 개별의 삶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못 바꾸더라. 그걸 받아들이고부터 유난스럽게 안 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주변에 영향을 주고 내가 필요한 사람에게 시간과 여력을 쏟을 수 있어서 훨씬 좋아졌다.”

그는 “옛날엔 남한테 피해 주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며 “산다는 건 구질구질한 거고 피해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인정하는 것부터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사는 것’. 그게 책 전체의 주제란다.

그는 “살려면 버텨야 하는데 예전엔 혼자 고고하게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더는 그게 불가능하단 걸 알았다. 공감과 이해,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이 요즘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