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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02] 동맹(同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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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그렇고, 충성도 마찬가지다. 대개 굳은 맹세가 따른다. ‘맹세’는 맹서(盟誓)라는 한자 단어가 본딧말이다. 앞의 글자 맹(盟)이 흥미를 끈다. 본래 글자꼴은 그릇[皿]에 피가 담겨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이는 고대 제의(祭儀)와 관련이 있다. 옛 인류는 무엇인가를 숭배하거나 그로부터 계시를 얻기 위해 제사를 올렸다. 보통은 희생(犧牲)을 필요로 했다. 제물(祭物)로 올리는 소나 양, 돼지 등이다. '맹'은 그 희생의 피가 그릇에 담긴 형상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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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집단과 집단 사이의 약속에도 이런 이벤트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가장 일반적이었던 경우가 회맹(會盟)이다. 중국 춘추(春秋)시대 이후 여러 나라가 좀 더 크거나 강한 나라의 진영으로 합치고자 벌였던 모임이다.

보통은 삽혈(歃血)을 했다고 한다. 제물로 잡은 희생의 피를 마시거나 입 주위에 바르는 일이다. 이로써 함께 맹약(盟約)을 하고 한 대열에 선다. 우리는 요즘 그런 행위를 동맹(同盟)이라 적거나 결맹(結盟)으로도 부른다.

여러 집단이 한 묶음에 들면 연맹(聯盟), 그에 몸을 담으면 가맹(加盟)이다. 함께 약속한 틀에 있는 나라를 맹방(盟邦), 같이 전쟁을 치른 국가는 혈맹(血盟)이라 칭한다. 중국은 그런 '회맹'의 전통이 매우 깊다. 그렇게 맹약을 하고서도 제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은 자주 했다. 그럼에도 피를 나눠 마신 옛 동양 사회 회맹의 정신 바탕은 '성신(誠信)'이라는 가치 체계였다. 요즘 말로 풀자면 정성과 신뢰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비롯한 중국의 현대판 대외 회맹 정책은 거셌다. 그러나 제 국익만을 앞세우다 타국의 경계심을 잔뜩 자극해 고립세만 부쩍 키웠다. 정성과 신뢰의 진실성을 결여했기 때문일 테다. 2500년 전 춘추시대 사람들의 배포가 지금의 중국 집정자들보다 더 컸던 듯싶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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