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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식민지배 성찰 없는 아베, 위안부 합의 뒤집은 文… 한일관계 파탄 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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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불법 무효" 韓日지식인 성명 10주년… 와다 하루키-김영호 대담

조선일보

/오종찬 기자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은 2010년, 한·일 지식인 1000여명이 공동성명을 냈다. 일본의 식민지배는 처음부터 무효라는 선언이었다. 일본 측에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미타니 다이치로 도쿄대 명예교수 등 531명이 참여했고, 한국 측은 이태진·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작가 김지하·이문열씨 등 587명이 선언에 참여했다. 양쪽의 대표적 보수·진보 지식인들이 나선 것이다.

이 성명은 그해 8월 '식민지배가 한국인들의 의사에 반(反)해 이뤄졌다'는 내용의 간 나오토 일본 총리 담화를 이끌어냈다. 일본은 이듬해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 등 일제 때 반출한 도서 1200책을 돌려줬다. 잠시 훈풍이 불었다. 그로부터 10년,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반일·혐한의 역풍이 거세다. 지식인 성명을 주도한 와다 하루키(82) 도쿄대 명예교수와 김영호(80) 경북대 명예교수가 지난 주말 전화·이메일로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점검하고 출구를 찾는 대담을 가졌다.

김영호 "식민지배가 처음부터 불법 무효였다는 선언에 일본 주류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데 와다 선생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와다 하루키 "김영호·이태진 교수를 비롯한 한국 인사들이 나섰기에 가능했다. 가해국과 피해국 지식인들이 과거사를 놓고 합의할 수 있다는 게 희망을 줬다."

"한일 지식인 성명에 호응해 간 나오토 총리가 내놓은 담화는 이전과 어떤 점이 달랐나."

와다 "병합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는 점이다. 간 나오토 총리는 각의(閣議)를 거쳐 2010년 8월 10일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다. 우리가 발표한 지식인 공동성명에 가장 근접한 담화였다."

조선일보

/장련성 기자


"간 나오토 담화는 지식인 성명이 낳은 성과이고 대법원 징용 판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이육사의 시 '광야')고 생각한다. 지금 일본 총리 관저 홈페이지엔 이 담화가 삭제됐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간 나오토 담화를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다."

와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2011년 위안부 소송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정부의 부작위(不作爲)는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2012년과 2018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에 대해 배상 판결을 내렸다. 지식인 성명과 간 나오토 담화가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그런 의견이 나온다. 2009년 한국 고등법원은 강제동원 피해 항소심에서 일본 최고재판소의 원고 패소 판결(2007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국 법원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 인정에 소극적이었다. 지식인 성명에서 병합조약 자체가 불법 무효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식민통치의 성격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헌재와 대법원 판결이 바뀐 게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지식인 성명이 한일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원망도 듣는다."

와다 "일본 보수 단체에선 나를 지목하며 지식인 성명이 일·한 관계를 악화시킨 주범이라는 험악한 표현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누군가 꼭 했어야 할 일이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요즘이라면 일본 지식인들이 이런 성명에 대거 참여할 수 있을까."

와다 "분위기도 너무 바뀌었고 돌아가신 분도 3분의 1 이상이다. 그때처럼 많이 참여하긴 어렵다. 하지만 당시 공동성명에 참여한 지식인들은 학문적 신념에서 나섰기 때문에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베 정부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어가지 않는 데 대해 분노한다."

와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를 뒤집은 것은 문제라고 얘기해왔다. 양국 정부가 한 합의는 좀 부족해도 지켰어야 했다. 일본에선 위안부 합의 파기로 한국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한일 지식인이 함께한 공동성명을 거꾸로 되돌렸다. 아베의 역풍이 노리는 '65년 체제' 고수와 한일 지식인 성명의 신(新)한일체제는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을까. 지식인 성명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제2조(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를 '당초부터 무효로 한다'로 보는 한국 측 의견을 받아들이라는 '해석 개정' 아닌가."

와다 "해석 개정이라는 점에서 보면 신(新)한일체제이지만, 조문은 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65년 체제'다. 문제는 아베 정권과 문재인 정권은 이미 타협 불가능한 견원지간이란 점이다. 아베 정권은 코로나 대응 실패로 식물정부에 가깝다. 지지율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전략이다. 일본제철은 아베 정부의 의도에서 벗어나 한국 법원의 자산 압류에 대해 항고했다. 이미 한국 대법원의 프로세스에 옮겨 탔다는 이야기다."

"아베 정부의 반동에 저항하는 일본 시민들의 힘을 기대할 수 있을까."

와다 "시민들의 저항은 이미 시작됐다. 아베 지지율의 폭락이 증거다. 평화헌법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자신감도 부쩍 증가했다."

[진행·정리=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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