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7 (금)

성장소설 아닌 성장‘방해’소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책&생각]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문학동네(2018)


한겨레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출생의 뮤리얼 스파크는 버지니아 울프 이후의 영국 여성작가들에 대한 탐색 과정에 처음 읽게 된 작가다. 1918년생으로 1919년생인 도리스 레싱과 비슷한 연배다. 1951년에 작가로 데뷔하기에 1950년에 첫 장편소설을 발표한 도리스 레싱과는 작가로서의 경력도 비교된다(두 사람 모두 다작에다가 장수한 편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비교에는 제약이 따르는데, 주요 대표작이 번역된 레싱과 달리 스파크의 소설은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1961) 한편만 소개된 상황이어서다. 90년대 초에 나왔던 <느릅나무 밑에서의 수업>도 같은 원작의 다른 번역본이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가 작가 스파크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인데, 다행스러운 건 여러 매체가 ‘20세기 100대 영문소설'로 꼽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한 작품에 불과하더라도 뮤리얼 스파크라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늠하는 데는 가장 요긴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더불어 이 독특한 성장소설의 독자라면 뮤리얼 스파크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않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작가와 함께 기억하게 되는 이름은 주인공 진 브로디다. 한 여학교의 교사 브로디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고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따라가게 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성장기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자연스럽게 소설은 교육소설 내지 성장소설의 외양을 갖는다. 외양만으로 판단하자면 소설은 브로디 선생의 교육의 유익을 예찬하거나 해악을 폭로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미친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일까. 영국의 “전후문학이 낳은 가장 기념비적인 인물”이라는 평판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브로디 선생은 좋은 교사라기보다는 반면교사의 사례다. 자기 인생의 전성기가 막 시작되었다는 확신하에 학생들을 ‘크림 중의 크림'(최고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표현)으로 만들겠다는 의욕적인 교사의 포부가 어째서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가. 제목에서 힌트를 얻자면 ‘전성기'라는 자기도취적 생각에 있다.

처음 맡은 열살짜리 학생들을 데리고 브로디 선생은 역사수업 시간에 교정의 느릅나무 밑으로 향한다. 그녀는 자신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면서 “우리는 모두 전성기를 누리기 위해 태어난 거예요”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그런데 그에 덧붙여서 그녀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건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약혼자 이야기다. 전쟁이 시작될 무렵 브로디는 여섯 살 더 적은 청년과 약혼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휴전 일주일 전에 전사하고 만다. 그녀가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다. 약혼자의 비극과 브로디 선생의 불행에 아직 어린 학생들은 눈물을 훔친다. 1930년 가을의 장면인데 브로디 선생이 마흔줄에 들어선 때다.

짐작건대 브로디는 마땅히 전성기여야 했을 20대에 연인을 잃고 행복도 놓쳤다. 그렇게 지나가 버린 것 같은 전성기를 그녀는 다시 찾고자 한다. 아니, 40대가 자신의 전성기라고 주장하며 예술과 사랑에 관한 열정을 학생들에게 불어넣고 그녀를 따르는 여섯 명의 ‘브로디 무리'와 지속적인 사제관계를 이어간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할 만한 그녀의 지연된 전성기는 자기도취가 그녀의 핵심 성격임을 시사한다.

브로디는 학생들에게 뭔가를 쑤셔 넣는 주입식 교육에 맞서서 자신은 학생들의 영혼에서 뭔가를 이끌어내고자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그녀의 교육은 오직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는 교육이었다. “아직 말랑말랑한 나이의 소녀를 내게 주면, 그 애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거야”라는 말은 이 소설이 코믹하면서도 섬뜩한 이야기라는 걸 예고한다. 여섯 학생들의 후일담까지 전개되는 뮤리얼 스파크의 독특한 성장소설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쁜 교사에 의한 성장방해소설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서평가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