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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책지성팀장의 책거리]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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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책거리

한겨레

올해도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다룬 연구서들이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학살과 폭력에 관한 국내외 연구자들의 사유와 분투는 여전한데, 인류는 과연 전쟁의 악행과 결과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을까요.

중일전쟁 전범들을 인터뷰한 <악한 사람들>에서 지은이 제임스 도즈는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가보다 어디에 있는가로 규정된다”고 썼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평범하며, 대량학살은 악한 ‘그 사람’보다 조직의 정체성, 국가 이데올로기, 명령에 복종하는 태도나 문화 등과 관련이 있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역시 존재는 ‘정체성’이 아니라 ‘위치성’의 문제인 걸까요. 책을 읽으며 자신이 선 자리에 따라 태도나 생각이 달라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또한 <위태로운 삶>에서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사망한 어린이의 사진을 주류 언론사가 보도하길 거부했으며 대신 항공기가 공중에서 본 관점만 실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해 설정되고 유지되는 시각이었습니다. 버틀러는 우리 내면에 도사린, 불편함을 빨리 해소하고 넘어가려는 충동을 다스리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며 윤리적으로 씨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인간이 원래 그래’라는 단순한 말에 도사린 외면과 무신경에 항의하는 데는 상당한 인내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벼드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자이고 더 고민하는 사람 아닙니까. 사실은, 한발이라도 더 나아가 같이 살아보자는 요청이고 안간힘이라는 말이지요.

학술면에서 소개한 새책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에서 리처드 로티는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는 ‘연대’를 설명합니다. 타자의 얼굴을 직면하고 그 안에서 나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필요한 때입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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