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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 (토)

잔인한 세상과 싸우며 상상력 키우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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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리처드 로티 지음, 김동식·이유선 옮김/사월의책·2만5000원

철학자 로티, 공적 영역 자유주의와 사적 영역 아이러니스트 결합

공감적 상상력 넓혀 고통받는 타자를 우리로 포용하는 것이 연대


한겨레

미국의 자유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 위키피디아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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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로티(1931~2007)는 20세기 미국의 자유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동시대 독일 철학과 프랑스 철학의 깊은 영향 아래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담금질했다는 점에서 로티의 사유는 듀이나 롤스 같은 앞시대 자유주의 철학 거인들의 사유와는 사뭇 다른 색조를 지녔다. 더구나 로티는 철학을 문학과 엄격히 구분하는 전통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철학과 문학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둘이 보완재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생각이 잘 나타난 저서가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1989)다. 이 책에는 니체·하이데거·푸코·데리다 같은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프루스트·나보코프·오웰 같은 소설가들이 핵심 인물로 등장해 로티 자신의 철학적 구상을 뒷받침한다.

이 책은 개인의 창조적 자율성 보호와 사회의 도덕적 정의 구현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하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로티는 창조적 자율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개인을 아이러니스트(ironist)라고 부르고,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관심의 초점을 두는 사람을 자유주의자(liberal)라고 부른다. 서로 섞이기 어려운 이 두 인간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혹은 왜 조화를 이뤄야만 하는지를 설득해가는 것이 이 책이다.

한겨레

로티는 ‘우연성’이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의 제1부에서 자신이 옹호하는 자유주의가 어떤 철학을 배경으로 한 것인지 먼저 상세히 설명한다. 로티가 말하는 ‘우연성’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이해하려면, 우연성에 대립하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티는 우연성의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전통 형이상학에서 주장하는 ‘불변하는 실체·본질·본성’을 제시한다. 우리가 아는 어떤 것도 불변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는 것이 로티 철학의 출발점이다. 모든 것이 역사적 과정을 거쳐 우연의 중첩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의 자아, 우리의 언어가 그렇게 형성됐고, 우리의 공동체가 그렇게 형성됐다. 따라서 로티의 철학에는 본질이나 실체에서 시작해 이 현상 세계를 설명하는 전통 형이상학의 구도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종교의 절대자나 형이상학의 제1원인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형이상학적인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불완전한 인간들이 불완전한 도구들을 가지고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 사회다. 로티는 이런 조건에서 우리 인류가 지난 수백 년 동안 투쟁을 통해 구축한 상대적으로 가장 좋은 사회가 자유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이 자유주의는 비교적 품이 넓어서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를 포괄한다.

이런 전제 위에서 로티가 그려내는 자유주의자는 ‘잔인성이야말로 우리가 범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유주의자가 바라는 사회는 잔인성이 최소화한 사회, 인간의 고통과 굴욕이 최소화한 사회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자유주의자는 공적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는 이런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며 초월적인 원리에 입각해 명령하지도 않는다. 자유주의자가 쓸 수 있는 사회 개혁 방안은 잔인성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가능한 한 생생히 알려주는 작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뿐이다.

로티가 생각하는 자유주의 사회의 또 다른 주인공은 사적인 영역을 무대로 삼는 아이러니스트다. 아이러니스트란 새로운 어휘, 새로운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자기의 자아를 새롭게 창조하는 사람이다. 이런 아이러니스트의 전형으로 로티가 꼽는 사람이 소설가 프루스트·나보코프, 철학자 니체·하이데거·데리다·푸코다. 이 아이러니스트들의 상상력은 때때로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로티는 니체나 푸코를 그런 위태로운 경지를 보여준 사람으로 꼽는다. 자유주의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을 보호해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아이러니스트 자신도 그런 위험한 상상력을 사적인 영역 안에 머물게 하는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로티가 이런 인간형을 아이러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창조적 열정에 몰두하면서도 그 열정에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로티는 자유주의를 ‘마지막 어휘’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마지막 어휘’란 모든 인간이 인생의 궁극 목적으로 여기는 어휘를 말한다. 그리스도, 공산주의, 조국, 혁명, 평화, 자유, 행복 같은 것이 마지막 어휘가 될 수 있다. 자유주의자는 이 어휘들을 통일시키거나 그 어휘들의 옳음과 그름을 판정해줄 최종 심급, 곧 초월적 진리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유주의 사회는 각자가 고결한 희망을 담아 가슴에 품은 이 마지막 어휘들이 경합하는 사회이며, 그 안에서 누구의 어휘가 더 설득력 있는지 보여주어 동의를 얻어가는 사회다.

로티는 이상적인 자유주의 사회라면 누구나가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아이러니스트일 것이라고, 다시 말해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liberal ironist)일 것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서는 새로운 어휘와 언어를 창안함으로써 자기 창조에 몰두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 세계에서 고통과 굴욕이 사라질 날을 희망하며 노력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노력을 할 때 필요한 것이 공감적 상상력이다. 이 공감적 상상력이 커질수록 낯선 사람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포용력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낯선 사람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로티가 말하는 ‘연대’다.

로티의 자유주의 철학은 인간과 세계의 근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얄팍한 철학으로 비칠 수 있다. 또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온건한 철학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절대적 기준이 없어서 불완전한 인간들끼리 조금씩 사회를 개선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로티가 그리는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의 초상에서 자신과 가까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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