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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아침을 열며] 공해 수출국 한국,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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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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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 일본 동경. 일군의 대학생과 시민들이 '도야마(富山)화학은 공해 수출을 금지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일본 최대의 의약품ㆍ화학약품 제조업체 도야마화학은 수은오염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주력 상품 머큐로크롬의 생산이 금지되자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환경 규제가 미약한 한국에 합작 공장을 건설하고 머큐로크롬을 생산해 일본으로 역수출하고자 한 것이다. 동경 시위를 조직한 시민들에게 자국 공해산업의 한국으로의 수출은 힘없는 나라에 대한 부당함뿐 아니라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일본 정치경제체제의 근원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시위로 여론이 악화되자 도야마화학은 공해 수출을 포기한다. 그러나 도야마화학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마산수출자유지역, 울산공단, 온산공단 등에는 일본에서 금지된 공해산업이 합작 형태로 대거 진출했다. 비중격천공증을 일으키는 6가크롬 생산시설과 이따이이따이병의 원인인 카드뮴 등 중금속 함유 폐광석을 생성하는 아연 제련시설은 그 대표적 예다. 암을 유발하는 석면산업도 일본 독일 미국 등으로부터 수입되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언론 통제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들에 의한 공해병으로 많은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이 오래도록 고통받게 된다.

당시 한국의 민주화운동 세력은 공해 수출이 개별 기업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해 수출은 인권 건강 환경과 평등한 국가 관계보다 자국 기업의 이윤을 앞세우는 일본 등 소위 선진국의 그릇된 정치ㆍ경제체제, 경제 성장을 모든 것에 우선하는 한국의 개발독재체제가 야기한 폐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화를 이룬 한국이 보여준 모습은 일본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국익과 국가경쟁력이라는 미명 아래 석면산업 등 많은 공해산업들을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 수출해왔다. 이는 민주화운동 세력이 집권한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공해산업을 넘어 기후ㆍ생태계를 파괴하는 해외 사업에 대한 투자와 기술ㆍ설비 수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두산중공업 중부발전 등은 인도네시아의 석탄화력발전을, 삼성물산 포스코인터 등은 팜유농장과 팜 착유공장을 직접 건설ㆍ운영하거나 투자해 왔다. 2018년 붕괴 참사가 일어난 라오스의 수력발전댐도 SK건설이 참여해 건설한 것이었다. 비단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이 아니더라도 이 사업들은 삼림과 생태계 훼손으로 기후위기를 가중시키고, 지역 주민의 삶과 건강을 위협하며, 심지어 아동 노동 착취 같은 인권 문제까지 일으켜 현지 및 국제환경운동 단체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 왔다. 한국의 신규 동남아 석탄화력발전 건설과 투자에 대한 반대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 위치해 있다.

도야마화학의 공해 수출 반대 시위에 나섰던 시민들은 일본의 성장 중심 정치ㆍ경제체제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당시 한국의 민주화운동 세력도 일본의 공해 수출은 기업의 부도덕함 이전에 잘못된 정치ㆍ경제체제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46년의 긴 세월이 지난 오늘날 과거 일본을 향했던 비판은 그대로 한국에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자국 기업의 이윤을 위해 인권, 건강과 환경을 외면하고, 기업 위주 경제 성장을 모든 것에 우선하는 우리의 정치ㆍ경제체제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일보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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