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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금)

위안부 문제 시로 풀어낸 20대 재미 작가 "인간의 잔인함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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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정민 윤 국내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아시아계 여성의 보편적 경험 담으려 노력"

"역사 알게 한 시에 미국인 독자들 고마워해"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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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Yoon)의 시는 고통을 소통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변화시킨다.”(뉴욕타임스)

“가슴 저미는 데뷔···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워싱턴포스트)

2018년 9월 미국의 대형 출판사인 하퍼콜린스에서 출간된 한인 1.5세 여성 작가의 데뷔 시집이 미국 문단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라는 제목이 붙은 시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라는 어두운 역사와 함께 현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폭력을 깊게 파고들어 주목을 받았다. 그 시집이 2년 만에 번역돼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열림원)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한국계 캐나다인 시인 에밀리 정민 윤(29)은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며 벅찬 소회를 밝혔다. 소설가 한유주가 번역을 맡았고, 시집 앞부분에는 한글판이, 뒷부분에는 영어 원본이 함께 실렸다. 일주일 전 입국한 시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자가격리 중으로, 간담회에는 영상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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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집의 주제에 대해 “이 책의 잔인함의 주체는 인간”이라며 “인간 잔인함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폭력을 통해 인간의 폭력적 측면을 부각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책이 반일 민족주의로 읽히고 싶지는 않았다”면서 “다양한 폭력들, 현대 여성들이 받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시인 자신의 경험과 아시아계 여성 모두의 보편적인 경험을 담으려 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책을 읽으며 일본군 위안부뿐 아니라 전쟁 폭력과 여성에 대한 폭력은 다 이어져 있다는 것을 상기해주셨으면 좋겠다”면서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에서 성 착취를 하고,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범죄 행위를 저지르거나 미국인이 한국에서 저지른 일 등이 모두 역사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시인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2002년 부모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펜실베이니아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과정에서 쌓인 시들은 출간과 함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는 “미국인 독자들이 이 같은 역사를 알게 해 줘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면서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각국이 보편적으로 경험한 것을 시로 접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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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위안부’ 역사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시로 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그는 “비판의식 없는 단순한 재현은 폭력이 되기 쉽다”며 “내가 이분(위안부 할머니)들의 트라우마를 반복하게 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폄하·훼손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할머니들이 발언할 수 있는 위치나 상황에 있는가, 내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말함으로써 그분들과 사회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거듭 질문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고민하는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미국인 친구들이었다. 그는 ‘시를 쓰는 한국인 여성으로서 네가 아니면 누가 이 이야기를 시로 쓰겠느냐’는 친구들의 말이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향후 활동에 대해 저자는 “사실(fact)이 아닌 진실(truth)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소설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서 “이번 시집은 분노와 슬픔을 비료삼아 쓴 글인데, 다음 작업은 악쓰고 소리 지른 이후에 나를 돌보는 마음으로 돌봄과 사랑에 관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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