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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사이언스카페] “콜럼버스, 유럽에 매독 가져온 주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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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인 유골서 콜럼버스 귀환 전의 매독균 DNA 발견

조선일보

의사가 매독에 걸린 환자의 소변을 검사하는 모습을 묘사한 1497년의 목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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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연 콜럼버스가 유럽에 지독한 성병(性病)을 퍼뜨린 주범이기도 하다는 오명(汚名)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유럽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매독(梅毒)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돌아오기 100년 전에 이미 유럽에 퍼져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매독을 유발한 병원균이 지금도 전 세계 퍼져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앞으로 매독균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1400년대 초 유럽인 유골서 매독균 DNA 찾아

스위스 취리히대의 베레나 슈네만 교수 연구진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중세 유럽인의 유골에서 DNA를 조사해 매독균이 이미 1400년대 초에 유럽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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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대 연구진은 핀란드 등에서 발굴한 중세 유럽인의 유골에서 매독균의 DNA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네덜란드에서 발굴한 유골 9구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했다. 이 중 네 가지 시료에서 매독을 유발하는 ‘트레포네마 팔라듐 균(菌)’의 유전자가 나왔다. 연구진은 이 유전자를 오늘날 매독균의 유전자와 비교했다. DNA에 생긴 돌연변이 발생률을 근거로 유골에서 찾은 매독균의 연대를 측정했더니 14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유럽에 돌아온 게 1493년이니 약 100년 전에 이미 매독균이 유럽에 있었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콜럼버스가 신대륙 원주민과 접촉하기 전에 매독균이 유럽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첫 DNA 증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성관계를 통해 퍼지는 매독과 함께 피부 접촉으로 퍼지는 비성매개성 매독균의 DNA도 유럽인의 유골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런 비성매개성 매독균은 오늘날 적도나 아열대 지역에서만 발견된다.

◇매독 기원 두고 신대륙 기원설과 유럽 내재설 다퉈

15세기 유럽을 휩쓴 매독은 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기록상으로는 1495년 프랑스 용병이 처음으로 매독에 걸렸다고 나온다. 이 시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온 1493년과 비슷해 매독이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퍼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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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신대륙을 탐험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1519년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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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와 선원들이 신대륙의 원주민 여성과 성관계를 맺으면서 매독균이 옮아왔다는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오기 전에 살았던 원주민의 유골에서도 매독에 걸린 흔적이 발견되면서 콜럼버스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반면 매독이 이미 유럽에 있었다는 반론도 나왔다. 유럽 전역에서 발굴된 유골에서도 이미 14세기에 매독에 걸린 흔적이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주장 모두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유골에 남은 흔적은 반드시 매독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뼈에 남은 흔적은 다른 병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매독에 걸려도 골격에 흔적이 남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번에 매독균의 DNA를 찾아 유럽 내재설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됐다.

◇정확한 연대 알려면 추가 유골 조사 필요해

이번 연구에 대해 과학자들은 중요한 성과라고 인정하면서도 매독균이 유럽에 원래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성급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미국 미시시피 주립대의 몰리 주커만 교수는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매독균의 DNA를 직접 추출한 것은 큰 성과”라고 인정하면서도 “DNA의 연대 폭이 너무 넓어 콜럼버스설을 완전히 반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연구진도 연대 측정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더 많은 유럽인의 유골을 조사해 정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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