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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근대 마침표 찍은 코로나 혁명…자유의 가치 새롭게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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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어떤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 격리 사회, 방역 사회, 비접촉 사회…. 코로나19는 많은 학자에게 세계사의 변곡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때마침 희붐하게 보이는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는 철학자와 역사학자의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비통한 마음으로, 그러나 비록 사랑하는 전우들을 잃었어도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하며 항해를 계속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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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를 인용하며 열리는 '뉴노멀의 철학'은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모색하는 책이다. 히말라야 14좌 등반에 비견할 만한 성취인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을 번역해 이름을 알린 철학자 김재인은 인공지능(AI) 시대의 철학을 논한 전작에 이어, 또 한 번 동시대 진단에 나섰다. 그에 따르면 인류는 지금 '공포와 놀라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의 공포는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언제든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남을 감염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는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이 더 명확해졌다.

김재인은 인류가 코로나19와 함께 '포스트 근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 위기와 AI가 그 전조라면, 코로나19는 근대의 끝을 알려주는 마침표라는 분석이다. 그는 '코로나 혁명'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명명을 서두부터 꺼낸다. 혁명은 정치적 의미로만 한정될 필요가 없으며, 다른 체제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의미에서다. 그에 따르면 서양의 근대는 거대한 성공과 실패를 모두 통과했다. 근대는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개인을 발명했다. 코로나 혁명은 이런 가치를 바꿔버렸다. 경계 없는 지구는 갑자기 작동을 멈췄다. 국경을 비롯한 경계가 재발견됐다. 인권과 안전의 위치도 재정립된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신성시되던 분위기는 무차별적인 역병의 공세 앞에 위축됐다.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킨 한국의 방역은 기묘하게도 서양의 찬사를 불러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감염병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 얽혀 있는 현상임을 진작에 간파했다. 자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토가 망가지면 개인의 자유도 없다. 협력과 연대를 바탕으로 기술 통신 방송 소셜미디어를 총동원한 방역 태세를 저자는 준-직접민주주의라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인문학자다. 일생을 매달려온 길의 미래를 재단한다. 철학 문학 예술 역사 같은 분야가 그동안 발전이 더딘 이유는 과학적 사고와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결론적으로 그는 '과학을 품은 인문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이 새로운 시대의 선진국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창조력 있는 다음 세대를 길러낼 때 가능한 일이다. 개화기 때 서양을 흉내 내 만든 인문학을 벗어나, 인문 과학 예술이 만난 '뉴리버럴아츠' 교육을 할 때, 비로소 인문학은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교육의 틀을 바꾸는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뎌 보자는 제안과 함께.

서양사학자 이영석은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쓴 성찰의 기록을 '잠시 멈춘 세계 앞에서'로 묶었다. 그가 서양사를 공부한 것은 근대화 콤플렉스에서 비롯됐다. 그러다 서구는 왜 실패했는가를 연구하면서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그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와 국가 시스템이 본궤도에 올라,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능동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남을 뒤쫓고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모델과 새로운 전범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소중히 하면서도 공적 헌신과 자발적 참여에 바탕을 둔 사회를 이룩했다고 말이다.

동시에 미국의 위기를 마주하게 됐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전락은 근대 문명의 조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위기 탈출 전술로 중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호전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다. 1952년 수에즈 위기로 영국과 미국 관계가 악화되고 파운드화가 폭락한 역사가 있다. 현재의 미·중 갈등을 이 당시와 비교하면서, 당시와는 달리 현재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은 어느 쪽이 일방적 우위가 없는 균형 상태라고 진단한다. 그만큼 위기가 또 다른 위기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이 위기를 해소할 국제 거버넌스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새로운 변곡점을 맞아 국가 간 중재와 대화의 복원이 다시 중요해졌다고 조언한다. 노학자의 글에는 위태로운 인류세와 위협받는 세계화에 관한 회한 어린 성찰이 가득하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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