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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아무튼, 주말] 은퇴·반성문·눈물의 고해성사… 유튜버는 왜 줄줄이 고개를 숙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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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70여명 뒷광고 줄사과

124만명이 구독하는 먹방 유튜버 '애주가TV참PD'가 생방송에서 유튜버들의 뒷광고 실태를 폭로했다. 그는 지난 4일 "2년간 자료를 모았다"면서 문복희·쯔양 등 이름난 유튜버들이 뒷광고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이 저격 이후 11일이 지났다. 요즘 유튜브는 '너도 뒷광고 받았느냐'는 의심과 '나도 뒷광고 받았다'는 고해성사로 뒤덮여 있다.

'뒷광고'는 광고비를 받고도 밝히지 않는 행위를 통칭한다. 뒷광고 논란에 사과한 유튜버는 문복희(구독자 448만명), 도로시(400만명), 엠브로(153만명), 나름TV(154만명) 등 70여 명. 심지어 크리에이터 500여 명이 몸담은 초대형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인플루언서를 관리하는 소속사) 샌드박스 네트워크까지 "소속 크리에이터의 일부 영상에 유료 광고 표기 문구가 누락돼 있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유튜버들의 사과는 신속하고 극적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잘못을 고백하면서 눈물을 흘리거나(나름TV) 기존 영상을 모두 삭제한 후 자필 반성문을 쓰고(양팡), 뒷광고 광고비를 모두 환원하겠다고(박뚜기) 했다. 일각에선 "더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잘 사는데…"라는 동정론마저 나올 정도다. 이들이 석고대죄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유튜브 시청자들은 유튜버가 만드는 콘텐츠와 유튜버 개인의 도덕성을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다. 유튜버의 잘못이 드러나면 그가 만드는 동영상도 의심하기 때문에, 유튜버들은 잘못했다고 빌거나 유튜브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결국 핵심은 돈"이라고 했다. "인플루언서 시장은 기성 산업보다 훨씬 휘발성이 강하고, 소비자 반응이 빠릅니다. 인플루언서의 잘못 하나가 자기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뭉갤 수가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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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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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영상 한 편에 수천만원 오가

뒷광고는 불법이다. 공정위는 소비자 기만 광고의 일종이라며 뒷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뒷광고가 관행처럼 퍼져 있다고 말한다. 작년 유명 유튜버들과 뒷광고를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 기업 관계자는 "먼저 뒷광고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에는 뒷광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유튜버가 광고 표기를 안 했을 때 시정을 요구하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0~11월 국내 상위 60개 인플루언서의 광고 게시물 582개를 조사했더니 '경제적 대가를 받았다'고 밝힌 글은 29.9%(174건·유튜버는 15.5%)에 그쳤다.

유형도 다양하다. 단순히 '유료 광고' 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내가 사비로 구매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강조하거나 심지어 거짓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구독자가 250만명에 달했던 유튜버 '양팡'은 지난 3월 가족들과 함께 푸마 부산 광복점을 방문한 영상을 올렸다. 당시 영상에서는 양팡을 알아본 매장 직원이 "팬이다. 본사에 전화해 협찬이 가능한지 물어보겠다"고 제안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후 직원은 "본사에서 원하는 제품을 모두 가져가셔도 된다고 한다"고 했고, 양팡은 푸마 옷을 385만원어치 골라 집으로 가져온다. 유명인을 알아본 직원이 즉석에서 협찬을 제안한 것처럼 꾸몄지만, 사전에 푸마 측과 기획한 연출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양팡의 구독자는 40만명 넘게 급감했다. 온라인에선 '소비자를 기만한 푸마를 불매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인플루언서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 이상이다. 통상 인스타그램 포스팅의 경우 팔로어 1명당 5~10원이 '표준 단가'. 예를 들어 팔로어 10만명을 보유한 인스타그래머에게 '광고주의 매장을 방문해 촬영한 사진을 올려달라'고 요구할 경우, 50만원 안팎이 오간다. 인플루언서가 MCN에 소속돼 전문적인 관리를 받고 있거나, 어떤 시장에 특화되어 있다면 금액이 더 뛴다. 팔로어 수십만을 보유한 준연예인급 인플루언서는 이미지 한 장을 올리고 수백만원을 가져간다.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는 단가가 훨씬 높다. 파급력이 크고, 인플루언서가 기획과 제작 단계부터 참여하기 때문이다. 한 편 전체를 제품 광고에 할애하는 브랜디드 콘텐츠의 단가가 가장 비싸고, 제품이나 브랜드를 여러 영상에 지속 노출하는 기획 PPL, 제품을 특별히 소개하지 않고 노출만 시키는 일반 PPL 순으로 가격이 책정된다. 브랜디드 콘텐츠를 기준으로 구독자 15만명 수준의 일상 유튜버 A씨는 한 편에 약 500만원, 구독자 90만명 수준의 먹방 유튜버 B씨는 약 1000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광고 시장이 활발한 뷰티·패션 분야, IT 분야 유튜버는 다른 유튜버들보다 단가가 더 높다. 크리에이터 수백 명이 소속된 대형 MCN에서 근무했던 박정미(가명·26)씨는 "구독자 80만명의 한 뷰티 유튜버가 건당 2000만원, 구독자 200만명의 다른 유튜버는 건당 4000~50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평범한 직장인의 연봉을 하루에 버는 것이다. 미국 마케팅 업체 이제아(IZEA)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유튜버들이 동영상 한 편당 받는 금액은 평균 6700달러(약 800만원). 2014년의 420달러(약 50만원)보다 16배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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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들이 광고비를 받고 영상을 찍은 사실을 숨겼다는 이른바 ‘뒷광고’ 논란이 거세지자 유명 유튜버들이 줄줄이 사과에 나섰다. 사진은 구독자 154만명의 ‘나름TV(왼쪽)’와 구독자 209만명의 ‘양팡(오른쪽)’ 채널에 올라온 사과 영상.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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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가 시켰다" vs "유튜버가 알아서"

뒷광고를 먼저 제안하는 쪽은 대부분 광고주나 광고 대행사다. 광고 문구를 표기한 동영상은 조회 수가 덜 나오고, 시청 시간도 짧아 광고주 입장에서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구독자 6만명의 뷰티 채널을 운영하는 전업 유튜버 김연주(가명·29)씨는 광고주 요구로 수차례 뒷광고 영상을 찍었다. 뒷광고라고 일반 광고 영상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은 적은 없었다. 다만 광고주가 '광고 표기를 빼달라'는 요구를 하면 거절하지 못했다. 김씨는 "수입이 불안정한 유튜버에게는 돈줄을 쥔 광고주가 갑(甲)"이라며 "언제 또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광고 표기를 빼달라'는 광고주 요구를 무시할 순 없었다"고 했다.

반면 일부 유튜버들은 광고주 의사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광고 표시를 누락하기도 한다. 광고를 너무 많이 하면 자기 이미지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구독자 90만명 규모 먹방 유튜브 채널의 전직 PD는 "한 달에 영상을 6~7편 정도 제작했는데, 이 중 2개가 '적정 광고 수'였다. 광고가 2개를 넘어가면 광고 문구를 뺐다"고 했다. 구독자 50만명 이상 뷰티 유튜브 채널의 기획자 김모(26)씨도 "광고라는 걸 솔직히 밝힌 유튜버들의 영상에 '쟤는 광고만 받는다' 같은 비난 댓글이 달리니 광고 사실을 점점 숨기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가 관리하는 유튜버도 브이로그에서 별도 광고 표기 없이 PPL 광고를 진행했다가 뒷광고 논란 이후 조용히 '유료 광고 포함' 문구를 붙였다. 이 유튜버는 아직 누리꾼들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일단 뒷광고를 진행하기로 하면 대행사가 인플루언서 측에 제작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꼭 언급해야 하는 제품의 특장점부터 "100% 리얼 후기" "여태 써본 제품 중 최고" 같은 구체적 문구까지 적혀 있다. 인플루언서는 이 매뉴얼대로 영상을 제작해 광고주의 컨펌을 받고 나서 유튜브 등에 게시한다.

유튜버가 광고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이상 소비자들이 뒷광고를 알아채기는 어렵다. 일상 콘텐츠와 구별할 수 없도록 교묘히 제작하기 때문이다. 한 대형 MCN 관계자는 "파급력 있는 유튜버들은 광고 콘텐츠 제작을 위해 소속사가 작가, PD까지 지원한다"면서 "사실상 유튜버와 광고주가 마음만 먹으면 영원히 뒷광고를 계속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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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주만 처벌, 유튜버는 처벌받지 않는다?

내달부터 광고지침 개정안 시행
인플루언서 처벌은 어려워


9월 1일부터 SNS 유명인이 광고를 진행할 때 금전적 대가, 할인, 협찬 등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를 소비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한다. 유튜버가 영상 제작에 금전적 대가를 받았을 경우 제목에 '광고'라는 문구를 삽입하거나, 동영상 안에 5분마다 '유료 광고'라고 알려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이런 내용이 담긴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 지침' 개정안을 내달부터 시행한다고 예고했다. 개정안은 표시·광고법에서 규정하는 기만 광고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사업자가 이를 어기면 최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개정안은 유튜브뿐만 아니라 아프리카TV·트위치 등 1인 방송, 블로그·인스타그램 등 글과 사진 중심 매체에서 광고를 진행할 때도 경제적 이해관계를 명확히 공개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실시간 방송에서 광고를 진행할 경우 5분에 한 번씩 '광고료를 지급받았다'고 언급해야 한다. 처음과 끝에만 광고임을 고지하면 중간부터 시청하는 시청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협찬을 받아 방송을 진행할 땐 방송 제목에 '협찬 광고 중'이라고 명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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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유튜버 양팡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 일부. 한 의류 매장 직원이 385만원어치 옷을 즉석 협찬해 준 것처럼 연기했지만, 사실은 사전에 기획된 광고 영상이었다. 내달부터는 이런 광고 영상을 올릴 때 광고라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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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나 글로 추천·보증을 하는 경우 본문 첫 줄부터 광고임을 명시하거나, 첫 번째 해시태그에 광고임을 밝혀야 한다. 소비자들이 더보기 버튼을 눌러야만 광고임을 알 수 있게 표시 문구를 글 후미에 배치하면 안 된다.'체험단' '#AD' 'Sponsor'같이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문구도 금지된다.

다만 이번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해서 기만 광고를 한 인플루언서가 바로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표시·광고법은 사업자를 처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현행법상 사업자는 광고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동찬(더프렌즈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아직 인플루언서를 사업자로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표시·광고법은 광고자가 아닌 광고주 규제가 중심이라 뒷광고를 해도 인플루언서를 처벌하긴 어렵다"고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업계에서 자정 작용이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적인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인플루언서들의 뒷광고는 해외에서도 논쟁 중이다. 프랑스는 뒷광고를 한 인플루언서 개인에게 최대 2년의 징역, 30만 유로(약 4억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벨기에는 광고 표시가 없는 광고 영상을 당국이 강제로 삭제할 수 있고, 인플루언서와 광고주에게 최대 8만 유로(약 1억100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반면 미국은 인플루언서보다 광고주를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각에선 '기만 광고를 용인한 플랫폼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유료 광고 표시 기능을 도입하고 있지만, 인플루언서가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별도로 제지하지는 않고 있다.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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