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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아무튼, 주말] 서촌 한복판에 뻥 뚫린 우물?… 인스타그램 성지 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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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문화공간 ‘브릭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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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테라스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모습. 원통형 중정이 마치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공간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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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연못이 있네.” 지루한 장마 틈새로 파란 하늘이 빼꼼 얼굴 내민 지난 12일 낮.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 뒤편에 있는 한 건물에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출입증을 목에 건 채 지나가던 직장인도 걸음 멈추고 사진 찍는다. 피사체는 건축사사무소 SoA(강예린·이치훈)에서 설계해 몇 달 전 완공한 4층 건물 ‘브릭웰(Brickwell)’. 오픈 때부터 완성도가 높아 건축계에서 화제를 모았는데 최근 ‘인스타그램 성지’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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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바라본 브릭웰. 가운데 둥글게 뚫린 부분이 보이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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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는 의료기기 업체인 기산과학. 전시기획사 미디어앤아트가 임차해 전시 공간 '그라운드 시소'로 운영 중이다. 현재 웹툰 '유미의 세포들' 전시가 한창이다. 전시 관람을 하지 않으면 내부를 볼 수 없는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이 건물이 지닌 개방성과 조형미 덕이다.

오밀조밀 작은 건물들이 빈틈없이 들어찬 서촌에서 1층 절반을 필로티(벽 대신 기둥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구조)로 띄워 누구나 드나들게 정원을 만들었다. 이 정원이 동쪽에 있는 백송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백송터는 1962년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다가 1990년 태풍으로 고사한 백송(白松)이 있던 자리. 지금은 밑둥치만 남아 있다. SoA 강예린 소장은 "1층은 개인 정원이 아니라 마을의 공공 정원 성격을 담았다"며 "전시를 안 보더라도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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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의동 브릭웰 1층 정원 모습. 사유지지만 필로티 구조로 띄워 행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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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까지 뻥 뚫어 만든 지름 10.5m 원통형 아트리움(중정)은 빽빽한 도심에 낸 숨구멍 같다. 2~4층 외부 테라스가 정원을 둥글게 감싼다. 야광나무, 해오라비난초, 털부처꽃 등 도심에서 보기 드문 식물을 심은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작은 숲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고개 들어 보면 동그랗게 잘린 하늘이 걸려 있다. 공공건물이 아닌데 금싸라기 땅을 이렇게 비워내기란 쉽지 않다.

강 소장은 "건축주가 의료기기 수입차 유럽을 자주 다니며 건축에 관심을 키운 분"이라며 "설계를 의뢰하면서 세 가지를 부탁했다. 바로 옆 백송터와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 어우러져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으면 한다, 정동 성공회성당처럼 벽돌로 지어 우직한 이미지를 줬으면 좋겠다, 층고가 높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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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에 개방된 1층 정원에서 바라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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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이름 속 두 단어 브릭(brick·벽돌)과 웰(well·우물)은 건물을 이해하는 두 가지 뼈대다. 주 외장재로 사용된 벽돌은 그냥 쌓아올린 게 아니라 삼등분해 이격재를 넣어 목걸이처럼 뀄다. 우물은 원통형 아트리움을 상징하는 단어.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임대용 공간의 효율적 배치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이런 건물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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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바라본 브릭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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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깃든 역사를 알면 이해의 심도가 깊어진다. 경복궁 서쪽 담장에서 50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조선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창의궁 터로 추정되는 곳. 일제강점기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소유했던 땅이다. 조선시대 한양과 현대 서울의 도시 조직이 포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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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인왕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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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위로 바라보는 광경도 흥미롭지만 압권은 4층 테라스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풍경. 1층 연못을 바라보면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공간감이 느껴진다. 전시를 관람해야만 볼 수 있는 게 옥에 티. 취향에 맞는 전시가 열릴 때 올라가 보길 권한다. 마음의 두레박 내려 여유 한 바가지 퍼올려 보시길.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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