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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50배 차이나는 집값 통계… 정부, 입맛 따라 골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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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원·KB 자료 제멋대로 활용

0.02% 대 0.53%.

13일 한국감정원과 KB국민은행이 각각 발표한 서울 지역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이다. 같은 기간,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 가격 조사인데 통계가 25배 넘게 차이 난다. 시장은 "어떤 통계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정책은 감정원 통계를 토대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어느 통계가 더 정확하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특정 통계만으로 시장을 판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 경우 상황 오판에 따른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0.02% 올라 상승률이 전주(0.04%) 대비 반 토막 났다. 반면 KB 조사에선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0.53%로 전주(0.39%)보다 커졌다. 구(區)별로 살펴보면, 감정원 통계에선 가장 많이 오른 곳(중랑·동대문)의 상승률이 0.05%에 불과했지만 KB 통계에선 노원구가 1.05%로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특히 노원구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감정원(0.02%)과 KB의 격차가 50배가 넘는다.

감정원과 KB 모두 표본 조사를 통해 주간 통계를 만든다. 감정원은 9400여 가구, KB는 3만4000여 가구가 표본이다. KB는 협력 중개업소로부터 실거래가와 호가를 취합하는 반면, 감정원은 중개업소가 입력한 시세를 토대로 직원들이 '거래 가능한 가격'을 추정해 통계로 만든다. 감정원 관계자는 "표본이 다르고 보정 작업도 거치다 보니 다른 통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어느 통계가 더 정확한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지금은 정부 규제에 휴가철까지 겹치면서 사실상 거래가 끊긴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에서는 9356건의 아파트 매매 거래가 이뤄졌지만 이달 들어 13일까지 거래량은 382건에 불과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이사철이 끝나고 9월쯤 거래가 좀 풀려야 시장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공공 통계만 정확한 것처럼 인식하는 정부 태도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민간 통계를 근거로 '과거 정권보다 집값이 더 올랐다'고 비판할 때마다 정부는 '민간 통계는 신뢰할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KB 중위가격 통계를 토대로 "정부 출범 후 서울 아파트값이 52% 올랐다"고 주장하자 국토부가 감정원 매매가격지수를 토대로 "상승률은 14%에 불과하다"고 반박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일부 민간 통계로 시장 상황을 판단할 경우 과잉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도 때로는 KB 통계를 활용한다. 예컨대 아파트 공시가격에 대한 민원인의 이의신청을 기각할 때 "실거래가, KB 부동산 시세 등을 참고해 적정하게 산정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내놓는다. 정부는 또 지난 연말 '12·16 부동산 대책'을 통해 시세 9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 규제를 강화했는데, 여기서 9억원을 판단하는 기준이 'KB 시세 또는 한국감정원 시세 중 높은 가격'이다. 이를 두고 "입맛에 맞는 통계만 골라 쓴다"는 비판도 나온다.

부동산분석학회장 출신인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특정 기관의 통계만 활용하면 시장에 대한 인식이 왜곡될 수 있고, 잘못된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커진다"며 "정부는 통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보다 정확한 통계가 생산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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