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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의사 끊긴 지방병원… 창고가 된 병실엔 의료장비 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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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오른 의료인력 체계] [中] 의료진 씨 마르는 지방병원

전남 영광의 290병상 규모 A종합병원은 지난 12일 간호사 채용공고를 냈다. 인원 제한도, 모집 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병원 관계자는 "무료로 기숙사를 제공하고, 광주광역시 등 대도시보다 높은 연봉 조건을 제시하지만 간호사 3교대 근무에 필요한 인력을 채우기 어렵다"며 "10년째 연중 상시 채용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15개월동안 단 1명 출산… 분만실 폐쇄 - 14일 인천시 강화군의 한 병원에 인큐베이터 등 산부인과 장비들이 창고로 사용하는 빈 병실에 놓여 있다. 이 병원은 지난 2018년 11월 종합병원으로 문을 열었지만 1년여간 아기가 1명밖에 태어나지 않아 결국 산부인과센터를 신경외과센터로 바꿨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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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군의 210병상 규모 B종합병원은 2018년 가족 분만실까지 갖춰 문을 열었지만, 올해 1월 분만실을 폐쇄한 이후 해당 공간을 신경외과 뇌혈관센터로 쓰고 있다. 강화군에선 지난 2015~2018년 연평균 250명 안팎의 아기가 태어났지만, B병원 분만실에선 15개월 동안 단 1명의 아이가 태어났을 뿐이다. 군 내에 분만실이 있는 다른 병원은 없었다. 병원 관계자는 "산모들이 다른 지역 산부인과를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병원의 유일한 산부인과 전문의마저 "혼자 24시간 분만실을 지킬 수 없다"며 병원을 떠나면서 이 병원은 분만실 운영이 불가능해졌다. B병원은 50여 개 병상을 준비해놓고도 운영하지 않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20억원 들여 교대 근무자 100명이 쓸 수 있는 기숙사를 짓고 무료로 제공하고 있지만 의사도, 간호사도 구하기 어려워 병상을 놀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구당 의사 수, 서울이 경북의 2.2배

조선일보

현재 우리나라는 의사 수의 지역 격차가 크고, 이는 의료 서비스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보건 당국의 입장이다. 전국적으로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높은 지역은 서울(3.1명), 광주·대전(2.5명), 대구(2.4명) 등 대도시다. 경북(1.4명), 충남(1.5명), 경남(1.6명) 등에선 상대적으로 의사 수가 적다. 지난 2015~2017년 동안 응급 환자가 실제 사망에 이른 비율은 강원도 영월·정선·평창 지역이 강남·서초구 등 서울 동남권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장학금을 주고 해당 지역 학생을 뽑아 지역 의사로 기르면 이들이 그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며 지역의 의료 공백을 채워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지역 병원에 의료진이 왜 부족한지 고민해보지 않고 10년간 의무 복무하는 의사 수를 늘려놓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은 1차원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연봉 높게 불러도 지역 의료진 씨 말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의사 1명의 평균 월급은 서울이 1112만원으로 가장 낮았고, 전남(1683만원), 울산(1656만원), 경북(1627만원)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실제 인구당 의사 수가 적은 곳에서 의사들에게 지급하는 임금 수준이 더 높게 형성돼 있다. 지방의 병원 경영진들 사이에서는 "의사 연봉으로 3억~5억원, 간호사 연봉으로 1억원을 제시해도 의료진이 오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단순히 연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의사들이 지역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장성인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무 복무 때문에 높은 임금을 요구하기 어려운 지역 의사들이 배출되면 지방 근무 의사들의 평균적인 임금 수준이 낮아지면서 오히려 기존에 지방에서 근무하던 의료진이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에 사는 환자들은 시간과 돈을 써가며 서울 병원으로 올라오는 게 현실이다. 서울아산병원 등 서울의 5대 대형병원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까지 받으며 연간 외래 환자만 1만여명에 이른다. 서울 수서역에는 삼성서울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들어가는 셔틀버스가 있어 부산·경주 등 전국 각지의 환자들이 기차를 타고 올라오고 있다. 의료계에선 "환자들이 서울 대형병원의 유명 교수에게 진료받으려 하는 욕망은 강남의 값비싸고 쾌적한 집에 살고 싶은 욕망과 다를 게 없는데, 이를 정부가 억누르려고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공공의료대책위원장은 "의사도 사람인데 결국 지방의 주거 환경, 자녀 교육 여건 등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의무 복무 기간만 끝나고 모두 서울로 떠나버리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허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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