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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글로벌 경제유람] '포스트 홍콩'은 누가?  금융허브 되려면 4박자 갖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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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의사소통 가능ㆍ교육환경도 우수
택시ㆍ비행기 이용 쉽고 공공주택도 충분
보안법에 홍콩 글로벌 금융사 이탈 본격화
일본ㆍ대만 발빠른 움직임... 홍콩 장점 배워야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관광객들이 가장 큰 볼거리로 꼽는 홍콩의 야경.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아시아 금융허브' 홍콩에 자리를 잡으면서 초고층 빌딩들이 대거 생겨났고, 이로 인해 홍콩 특유의 야경을 갖추게 됐다. 출처 픽사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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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기에 빠진 '아시아 금융허브', 홍콩

‘아시아 금융허브’라는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부터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미ㆍ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자 홍콩을 거점으로 삼았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영업 중인 420개 헤지펀드의 운용자금 910억달러(약 109조원) 중 보안법 제정 전후로 310억달러가 빠져나갔다는 통계가 있다. 홍콩 시민들의 해외계좌 개설 문의도 30%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이 틈을 노리고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는 일본과 대만이다. 일본은 최근 금융관련 법규를 개정해 홍콩이 유사시 금융사업자가 피난할 경우 신속하게 일본에서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했다. 대만은 홍콩시민이 대만으로 이민할 수 있는 조건을 완화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전담 사무소까지 설치했다. 대만 정부는 이미 미국계 글로벌 금융회사 3~4곳이 대만으로 이전하기 위한 막바지 협상 중이라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나라들은 홍콩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까. 해외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제도 몇 개 바꾼다고 금융회사들이 터전을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이유다. 해외의 금융인력과 인프라를 빨아들이는 '금융허브'가 되려면 좀 더 다양한 매력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홍콩이 어떤 경로를 거쳐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50년 영국 통치가 남긴 유산 '영어'


홍콩은 자타공인 세계적인 관광지다. 우리나라 연간 관광객 수가 1,800만명 수준인데 홍콩은 2,500만명이 넘는다. 면적(1,104㎢)이 서울의 1.8배 정도 수준에 불과하고 특별한 문화유적지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관광객들이 홍콩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쇼핑이다. 면세 혜택 덕분에 같은 물건이라도 홍콩에선 더 저렴하게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격이 전부는 아니다. 대부분 점원들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해 물건 구매에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홍콩은 1997년까지 15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어가 준공용어로 통용된다.

홍콩에 거주하는 글로벌 금융회사 직원들에게도 이 점은 큰 메리트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다국적 직원들이 많아 사내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자연스럽게 영어권 지역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장기근무를 위한 필수요소 '교육'


교육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꼽힌다. 금융회사 직원들은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쾌적한 환경을 중시하는데, 이는 금융업의 특성과 관련이 깊다. 금융기관 종사자는 특정 고객과 인연을 맺게 되면 장기간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고객의 재무상태를 전담한다는 것은 해당 고객의 사생활을 알게 된다는 것과 같은데, 자산을 관리하는 직원이 계속 바뀌면 고객 입장에선 불안감이나 불쾌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액 자산가들의 재무 상담 직원의 경우 대를 이어 재무상담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이에 따라 자녀가 있는 금융사 직원들은 자연스레 교육 환경이 우수한 곳을 선호하게 된다. 이 점에서도 홍콩은 최적지로 꼽힌다. 홍콩은 ESF(English School Foundation) 계열의 국제학교가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이들 국제학교는 학비가 크게 비싸지 않고 100%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 자녀를 둔 글로벌 금융사 임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물론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중국 정부는 영어 중심 학교 대부분을 폐쇄하고, 일부만 남겨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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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홍콩 정부청사 앞에 설치된 한 쌍의 감시 카메라 뒤로 홍콩 깃발과 중국 오성기가 나부끼고 있다. 홍콩=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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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낭비를 줄여주는 '택시ㆍ비행기'


금융인들이 홍콩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택시의 천국’이라는 점이다. 홍콩은 어디서나 택시를 쉽게 잡을 수 있다. 택시를 잡기 위해 멀리 걸어갈 필요가 없고, 빈 택시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공항이나 터미널, 백화점 등에서는 택시 이용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 심지어 아파트 현관이나 회사 로비를 나오자마자 바로 택시를 탈 수 있다. 시간이 곧 돈인 고액 연봉의 금융인들에게는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비행기 역시 마찬가지다. 아시아 주요 국가들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는 점도 홍콩만의 특징이다. 홍콩은 자정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자정에 아시아 주요 도시로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수면을 취하고, 새벽에 도착한 뒤 하루 종일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저녁에 홍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홍콩익스프레스’를 이용하면 홍콩국제공항에서 시내 중심가까지 25분만에 도착이 가능하다.

주거난을 해소해주는 '공공주택'


주택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교통이나 언어 환경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홍콩은 전 세계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비싼 곳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홍콩 아파트 가격은 평당 1억원을 훌쩍 넘는다. 아파트 가격이 비싼 이유는 당연히 땅이 좁아서다. 홍콩 면적 가운데 아파트를 비롯한 중요 시설물이 입지한 홍콩섬과 카우룽반도가 차지하는 면적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역은 군소한 섬들과 전원지대로 주택을 지을 수 없다. 아무리 층고를 높여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홍콩에 초고가 아파트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아 부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서다. 이들은 다양한 세제 혜택과 금융서비스를 누리기 위해 홍콩에 거주하는데, 당연히 대형 평수의 초호화 아파트를 선호한다. 우리가 종종 신문 지면상에 마주치는 홍콩의 초고가 아파트들은 일반 서민들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아닌 아시아의 부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다.

반면 대다수 홍콩 시민들이 거주하는 곳은 공공주택이다. 홍콩 정부는 오랫동안 시민과 글로벌 금융종사자들에게 저가의 거주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공주택을 건설해 왔다. 1978년부터 공공주택을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정책기조는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홍콩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주택은 우리나라 공공주택과는 사뭇 다르다. 홍콩 정부는 시민들의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화된 공공주택을 공급한다. 소득이 가장 낮은 대상들을 위한 공공주택이 있고, 그보다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대상에게는 좀 더 쾌적한 공공주택이 제공된다.

홍콩도 한국처럼 부동산 문제가 만만치 않지만, 홍콩 시민 중 절반 가까이가 공공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것은 큰 버팀목이 된다. 홍콩 시민 중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은 200만명 이상이며, 공공분양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 역시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금융허브 도약하려면... 홍콩 배워야"


홍콩의 이 같은 특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실 일본이나 대만뿐 아니라 우리 정부도 홍콩에 있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길게 보면 20년 전부터 동북아 금융허브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국내 금융회사들을 세계적인 금융회사로 육성하기 위한 시도도 지속해 오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홍콩 사태는 우리나라에게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매력을 갖춰야 한다. 홍콩이 금융허브로 성장한 배경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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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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