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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日 총리 유력 후보 이시바 “원전 유지, A급 전범 합사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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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고노 다로 등 차기 총리 후보 9명의 저서와

선친과의 관계·경험 등을 통해 과거사 인식과 정치 철학 파악

조선일보

일본의 내일

나카지마 다케시 지음|박제이 옮김|생각의힘 252쪽|1만6000원

부침을 거듭해온 한·일 양국 관계에서 정치 리더십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일본에 한류 붐을 일으켰던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최악에 이른 지금의 한·일 관계 돌파구도 새로운 리더십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베 이후 '일본의 내일'을 이끌 총리 후보군의 정치철학을 소개한 이 책은 한국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하다. 일본 소장 정치학자인 저자는 아베 총리를 비롯해 이시바 시게루, 스가 요시히데, 노다 세이코,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가토 가쓰노부, 오부치 유코, 고이즈미 신지로 등 9명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정치공학적 분석보다는 정치인의 비전과 정책을 파악하기 위해 저서 위주로 접근한 점이 눈에 띈다. 아베를 이해하려면 자민당이 야당으로 밀려났던 1993년 그가 정치에 입문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베는 정권을 빼앗긴 자민당에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보수'의 재건이라 믿었고, 이를 자신의 첫 소명으로 삼았다. '논파'라는 단어도 즐겨 쓰는데, 타협하기보다 논쟁을 벌여 상대를 깨부수기 좋아하는 성향이 반영된 단어 선택이다. 일본인 사이에서 아베는 신의가 없고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저자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탓이라고 본다. 기시는 미·일 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오노 반보쿠를 회유하기 위해 차기 총리직을 약속했지만 조약 개정 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비판이 일자 기시는 "국가를 위해 거짓 약속을 했다"고 변명했다. 아베는 저서 '보수 혁명 선언'에서 외조부의 선택이 '동기 윤리'로선 문제가 있지만 '책임 윤리'로서는 훌륭했다고 변호했다. '정치인은 결과에 책임짐으로써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긴데, 우리로선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말이다.

조선일보

지난해 8월 15일 종전 기념일을 맞아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 중인 일본인들. 아베 신조 총리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지며 차세대 일본을 이끌 총리 후보들의 과거사 인식과 원전 정책, 고령화와 저출산 대책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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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차기 후보들의 역사 인식은 어떨까. 201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와 겨뤘던 이시바 시게루는 아베와 달리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을 합사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도 전쟁을 시작한 국가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에 대해 찬반 이분법을 거부하는 그의 견해는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이시바는 장기적으로는 원전 대체 기술에 투자해야 하지만 당장은 안정적 전기 공급을 위해 원전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노 다로, 오부치 유코, 고이즈미 신지로는 각각 고노 요헤이, 오부치 게이조,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2세다. 저자는 아버지와의 친소 관계가 이들의 정치 행보를 파악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고노의 정치적 선택을 이해하려면 그가 아버지를 향해 가진 애정과 거리감, 경의와 반발을 읽어내야 한다. 고노가 총리직에 오른다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고 아시아 이웃나라와 관계 개선을 추진했던 아버지와의 차별성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일본은 많은 분야에서 한국의 미래다. 청년 실업, 고령화와 저출산은 일본 차세대 총리 후보들의 뜨거운 정치 화두다. 난임(難妊)의 고통을 겪은 여성 정치인 노다 세이코는 자신의 경험을 '나는 낳고 싶다' '누가 미래를 빼앗는가: 저출산과 싸우다'란 두 책에 털어놓았다. 노다는 일본의 심각한 저출산을 '조용한 큰일'이라 명명하고, '여성은 집에서 애 낳고 육아에 힘써야 한다'는 남성 의원들의 견해가 저출산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비판한다. "일하는 여성이 많아진 시대에 발맞춰 취직해도 아이 낳기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노다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국을 향해 종종 불편한 말을 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일본에서 '인사(人事)의 귀재'로 통한다. 윗사람 심기를 살펴 행동하는 것을 '손타쿠'(忖度)라 하는데, 스가는 인사를 통해 손타쿠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와 딸 유코의 사연은 심금을 울린다. 총리직에 오른 뒤 한·일 관계 개선에 힘쓴 오부치 전 총리는 재임 중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그가 머리를 빗겨주며 키운 막내딸이 유학 중 이 소식을 듣고 울면서 귀국해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그가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한·일 관계 개선에 힘써주길 기대한다. ‘정치 좌표축’을 만들고, 책에 소개된 9명을 이념 성향에 따라 네 군으로 분류한 것도 흥미롭다. 아베, 스가, 고이즈미는 권위주의적이며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반면, 이시바와 고노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자유주의 성향이다.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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