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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 “잔인함의 주체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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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에밀리 정민 윤 지음|한유주 옮김 열림원|248쪽|1만2000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주 할머니의 1945년은 쓸쓸했다. ‘최후의 군인이 네 나라는 해방되었는데/ 내 나라는 불타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병영을 나와/ 걸었다/ 38선까지 내내 혈혈단신으로 걸었다/ 미군들이 내게 DDT를 너무 많이 뿌렸고/ 이가 전부 떨어져 나갔지/ (…) 나는 자궁을 잃었고/ 이제 일흔이다.’(시 ‘황금주’) 한국계 캐나다 이민자인 시인 에밀리 정민 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연작시로 재구성했다. 황금주·진경팽·강덕경 등 할머니들의 이름이 소제목이 됐다. 문장과 단어가 넓은 여백을 두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누군가의 기억을 더듬듯 천천히 읽힌다. 그 시절 소녀들에게 폭력은 일상의 불운이었다. ‘일상의 불운’이라는 동명의 제목으로 묶인 시 9편에서 시인은 소녀를 자갈에 빗댔다. ‘그녀는 소녀. 그녀는 자갈. 그녀가 잡혔다. 그녀가 자갈 한 줌처럼 잡혔다. (…) 땅이 자갈투성이다. 한국은 자갈이고 무덤이다.’ 시인은 ‘일상의 불운(Ordinary Misfortunes)’으로 미국 문단의 호평을 받고 유명 출판사인 하퍼 콜린스에서 첫 시집을 냈다. 워싱턴포스트는 “마음을 사로잡는 데뷔작”이라 평했다. 4개의 장, 35편의 시로 구성된 시집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 시작해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범죄,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 문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등 반복되는 폭력의 역사로 확장한다. 시인은 “잔인함의 주체는 인간”이라며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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