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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금값, 어디까지…‘안전한 피난처’ 역할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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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제 금값이 사상 최초로 1온스(28.35g)당 2000달러(약 237만원)를 넘어섰다. 금값은 올해 들어서만 30% 넘게 올랐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져서다. 코로나19 확산이 멈추지 않고 실물경제 회복이 언제쯤 가능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금값이 2300~30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주요 금융사들은 금값 전망치를 계속 높이고 있다. 골드만삭스그룹은 2300달러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증권은 2500~3000달러를, RBC캐피털마켓은 3000달러를 각각 예상했다. 금은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가격이 오른다.

그러나 계속 오를 수만은 없다. 금융위기 때를 보자.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됐다. 한 달 뒤인 10월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국제 원자잿값은 급락했고, 당시 금값은 온스당 800달러대를 기록했다. 실물경제에 타격이 오면서 세계는 불안해졌고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커졌다. 안전자산 심리 덕분에 금값은 2009년 9월 1년 만에 온스당 1000달러를 돌파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금값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1년 9월 온스당 1890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뒤인 2011년 10월 금값은 온스당 1600달러대로 떨어졌다. 2011년 9월 중 300달러 가까이 급락한 것이다.

다시 2020년이다. 금값은 코로나19 확산 초기였던 지난 2월 말까지만 해도 급등세를 보이다 3월부터 약세로 돌아섰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양상을 보이자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안전자산인 금까지 팔아치우는 투매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금값은 4월부터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금과 함께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화 가치도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금 시장으로 자금이 쏠렸다.

경향신문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본점에 금제품이 전시돼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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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행진 후 폭락, 금융위기 때 어땠나

안전자산인 금은 시장의 불안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다. 그런데 최근 금값 상승세는 단순하게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주식도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안전자산 금과 위험자산인 주식은 반대방향을 보이는데 주식도 오르고 금도 올랐다. 기존 통화에 대한 불신이 금에 투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존 통화들이 너무 풀리면서 금이 재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이 곧 화폐이던 시대도 있었다. 20세기 초까지 대부분 국가가 화폐 단위를 금의 일정량과 같게 하는 금본위제를 채택했지만 1970년대 미국이 ‘금태환’을 정지하면서 금의 가치와 관계없는 화폐가 등장했다. ‘달러’다.

그래서 달러와 금은 반대로 움직인다. 시중에 달러화가 더 풀리면 달러의 가치는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금의 가치가 높아진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국가가 돈을 풀었고,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국은 추가 경기 부양책을 논의 중이다. 달러 가치 하락은 필연적인 상황이다. 김 센터장은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서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교가 안 될 정도”라며 “지금 통화의 움직임이 매우 무질서하다”고 말했다. 통화 질서가 무질서하다는 것은무슨 뜻일까. 김 센터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유로화는 어수선한 세상이 안정될 때 강해지고 엔화는 세상이 어수선해질 때 강해지는데 지금 두 통화가 모두 달러에 대해 강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불신이 투영되는 현상이다. 김 센터장은 이어 “그런데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직전 아래라는 점을 보면 신흥국 통화는 달러에 대해 강하지 않은 상태”라며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라 보기 어렵고 통화세계의 질서가 무질서해지는 국면으로 가는 징후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원래 금의 약점은 이자도, 배당도 없다는 점이다. 중앙은행들은 코로나19 이후 금리 인하를 단행했고 저금리 상황이 짙어졌다. 이자가 없는 금의 약점이 상쇄되는 지점이다. 김 센터장은 “미국 금리가 ‘제로’로 가고 유럽·일본은 마이너스 금리까지 가면서 금이 가진 상대적 매력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투자 자산으로 금의 속성은 규모가 작다. 주식 시가총액이 61조달러, 미국·유럽 국채가 20조달러라면 금은 13조달러밖에 안 된다.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쉽게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백신 개발?… 금값은 어떻게 될까

그러나 금값은 2000달러를 돌파하고 불과 일주일 만에 급락했다. 금값이 2000달러를 돌파한 날이 지난 8월 5일인데 불과 일주일이 지난 12일 러시아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등록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190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값 급락은 단기 조정으로, 중·장기적으로는 금값이 오를 것이라 봤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 가격은 계속 상승 곡선을 그려와 한번 조정될 때가 왔고, 백신 개발 소식이 오히려 조정 빌미가 됐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백신을 개발한 것으로는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으로 낙관하기 어려워 금값 상승 조건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현재 금값 상승은 ‘안전자산 선호’ 요인보다 ‘급격히 불어난 유동성에 따른 자산가격 상승’ 요인이 더 커서 달라진 상황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지난 8월 9일 발간한 ‘해외경제 포커스’ 보고서에서 “주요국에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가면서 당분간 유동성이 풍부할 것”이라며 “금값은 한동안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됐다 하더라도 당장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실물경제 회복세가 눈에 보이지 않는데다 백신 개발만으로 코로나19 종식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언제쯤 상황이 달라질까. 황 위원은 “러시아가 백신을 개발해도 대량으로 공급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데 이 정도로는 코로나19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미국이 백신을 공격적으로 공급하는 시점이 온다면 그로부터 6개월 정도 지나야 경기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금값은 어떻게 될까. 황 위원은 “2300달러까지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학균 센터장도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다 조정받을 때도 금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모로 금은 여전히 오를 요인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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