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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채용 안 하면 공사 못해"…중소건설사로 번진 노조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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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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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아파트 신축공사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계되지 않음.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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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국노총 조합원) 채용하면 민노(민주노총)에 시달리는 부분이 해결된다"

"채용 안 하면 공사에 차질이 있을 수 있으니 알아서 판단하라"

지난해 마포구청이 발주한 100억 원대 공공사업을 수주한 A 중소건설사 현장 관리자가 최근 한국노총 관계자로부터 '채용 압박'을 받으면서 들은 말이다. 마치 조폭 영화 한 장면 같은데, 실제 건설현장에선 '관행'이란 이유로 아무런 제재 없이 벌어진다.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형건설사 이외 중소건설사가 시공하는 현장에서도 노조의 무리한 조합원 채용 요구가 잇따른다.

위 대화의 요지는 공사 현장에 한국노총 조합원을 채용하면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공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막아주고, 공사도 기한 내에 끝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사 입장에선 수용하기 힘든 조건이다. 현장엔 이미 A사와 계약을 맺은 근로자 수 십 명이 일하고 있어서다. A사 관계자는 "지반 공사를 마무리할 즈음 노조 관계자들이 찾아와 기존 인력을 빼고 자기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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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A사에 제시한 타워크레인 기사 표준계약서. /사진제공=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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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530만원, 특근 30만원" 노조가 건낸 '표준계약서' 보니

노조는 건설사에 자체적으로 만든 '표준계약서'를 제시했다. 피고용자 스스로 책정한 월급을 고용자에 사실상 통보한 것이다.

A사가 한국노총 관계자로부터 전달받은 계약서엔 타워크레인 조종사 직군의 '표준 월급'이 명시돼 있다.

기본급 475만원에 교통비 20만원, 체력단련비 10만원, 위험수당 15만원, 면허수당 10만원 등을 더해 530만원의 급여가 책정됐다.

노조가 제시한 '1일 8시간(평일 오전 7시~오후 4시, 토요일 오전 7시~오후 3시)' 기본근무에만 적용하는 급여 수준이다. 이외 추가 근무시 시간당 7만원을 더 지급해야 한다. 법정공휴일 특근 수당은 일일 30만원이다. 급여는 세금과 보험료 등을 공제한 뒤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조건도 붙었다.

자금 여력이 녹록지 않은 중소건설사에겐 큰 부담이다. A사 관계자는 "하루 1~2시간씩 한 달에 50시간만 더 일해도 35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란 의미"라며 "실제로는 1인당 월 800만원대 급여를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이런 교섭 방식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임금 수준은 다른 노조보다 낮고, 교섭 방식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건설사에 건낸 표준계약서 형식과 내용이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관계부처로부터 공인된 형식인지에 대해선 별도로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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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타워크레인분과 수도권지부 조합원들이 2020년 3월 2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폭력 민주노총 건설노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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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 거절한 건설사 '길들이기'..행정민원, 시위, 고발 진행

채용 제안을 거절하면 노조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인다. 행정기관에 각종 민원을 넣거나 진입로 등 공사 진행에 중요한 지점을 집회 장소로 신고한 뒤 시위를 하면서 공사를 방해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위법행위가 발생한다.

코로나19(Covid-19) 확산으로 집회 활동이 금지되면서 현장 시위는 다소 줄었지만, 다른 방식을 통한 '건설사 길들이기'는 더 심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외국인근로자를 불법 채용했다", "안전난간망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다" 등의 거짓 정보로 관계기관에 고발하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로 노조 측은 채용 제안을 거부한 A사 현장을 대상으로 고용노동부에 30여 개 민원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강원도시공사로부터 소규모 건물 공사를 수주한 B사 대표는 노조 채용 제안을 거부하자, "현장에 이동식 컨테이너 등 불법시설을 만들었다"며 검찰에 고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을 채용해도 보수를 더 받기 위해 고의적인 태업으로 공기를 지연시킨 경우도 많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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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내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 타워크레인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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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부족이 원인"…대형건설사 현장은 ‘나눠먹기’ 관행

이런 '구태'가 중소건설사 현장까지 번진 이유는 건설업 경기침체로 일감이 부족한 현상과 맞물려 있다.

대형 공사현장이 줄어들면서 일을 쉬는 조합원이 많아지자 공사 규모가 작은 현장까지 찾아가 채용을 강권한다는 얘기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타워크레인을 10개 가동하는 공사현장을 가정하면 그동안 노조 간 갈등을 막기 위해 한국노총 4대, 민주노총 4대, 비노조 2대 등 비슷한 비율로 일감을 분배했다"며 "한 번에 많은 조합원이 일할 수 있는 현장이 줄다 보니 중소건설사 소규모 공사장까지 채용 요구가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년엔 올해보다 건설사 국내 착공 물량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되면 공사현장에서 노조와 업체 갈등은 물론 일감을 더 확보하기 위한 노노 갈등도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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