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2 (월)

이슈 [연재] 뉴스1 '통신One'

[통신One]"네덜란드선 전교 1등 의대 안 가…돈 쫓아도 안 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윙헤이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의대생 인터뷰

"네덜란드 의사는 환자 놓고 경쟁하지 않는다"

뉴스1

네덜란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의대 강의실 © 뉴스1 차현정 통신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전 세계가 전쟁이라 일컫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에 참가했다는 한국 의사들의 뉴스를 보고 무척 실망했습니다. 저는 아직 의대생이지만 환자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의사는 어느 상황에서도 환자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는 의사를 선택할 수 있지만, 의사는 환자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네덜란드 의과대학 중 최고로 꼽는 로테르담 에라스무스 의대생 윙헤이(Wing Hee)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의사 파업과 공공의료에 대한 논란을 의대생 입장에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 네덜란드 의사가 되기 위한 조건

윙헤이는 "정말로 한국에서는 전교 1등이 의사가 되나"라고 반문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는 수학과나 물리학과 등 순수과학이나 공학계열이 의대보다 더 들어가기 어렵다. 보통 10점 만점에 의대 커트라인은 8점 정도다. 윙헤이는 "저는 7.5점이었지만 의료과학 지식 보강 수업 등을 통해 점수를 채웠다"고 말했다.

윙헤이는 평균보다 학업 성적은 부족했지만, 고등학교 때 전교회장을 하며 리더십을 발휘한 경험에 더해 양로원에서 1년 넘게 궂은 일을 도맡는 봉사활동을 한 경험을 지원서에서 강조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고통을 호소하고 죽음을 앞둔 환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왜 진심으로 의사가 되고 싶은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운 것도 당락의 열쇠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네덜란드 의대에서 가장 선호하는 과는?

네덜란드 의대 한 해 등록금은 네덜란드 국적자의 경우, 한 해 1000~2000유로 정도(약 140만~300만원 정도)로 다른 대학과 큰 차이가 없다. 네덜란드 의대생 중 3~4%는 유급되는데 이는 96% 이상의 의대생이 조건을 충족하며 학업을 이어나간다는 의미다.

이미 엄격한 입학 관리 제도를 통해 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인데 이것은 단순 성적으로만 뽑힌 학생들이 아니고 그만큼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진 학생들을 뽑았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네덜란드 의대는 학사 3년, 석사 3년이 의과대학 기본 이수 과정이다. 이후에는 전공하고 싶은 과에 따라 수련 기간이 4년에서 6년으로 나뉜다. 신경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같은 수술 집도 경험을 요구하는 과는 6년의 수련 과정을 거치고 일반 홈닥터(General Practitioners) 라 불리우는 가정의학 전문의는 수련 과정 4년 후 정식 의사가 된다.

네덜란드 의대에서 가장 선호하는 전공은 홈닥터(GP) 가정의학과이다. 수련 과정이 가장 짧고 주 3~4회 정도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1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의사가 병원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네덜란드서 의사는 '국가의 공공재'…공평한 의료 혜택 중시

네덜란드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의료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나라다. 국민들은 의무적으로 사보험을 선택하게 되어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인이 고를 수 있다.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도 모두 의무적으로 네덜란드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은 거주권 신청조차 할 수 없다.

네덜란드에서는 거주하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홈닥터를 환자 개인이 주치의로 선정을 하면 대부분의 1차적인 진료는 홈닥터가 시행하고 수술이나 검진 등의 2차적인 의료처치가 필요한 경우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병원이 아무리 유명해져도 홈닥터가 관리할 수 있는 환자는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보니 소문난 의사를 찾아가거나 잘 낫게 해주는 의사를 찾는 의료쇼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홈닥터들은 주말이면 당번제로 상급 병원의 응급실 당직을 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나 장애가 있는 환자를 직접 방문해 진료하는 것이 의무 사항이다. 한국처럼 월화수목금토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도시뿐 아니라 인구가 적은 소도시에서도 얼마든지 훌륭한 실력의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네덜란드의 전문의는 한 병원에 상주하지 않고 환자가 거주하는 지역 병원으로 직접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명의를 만나기 위해 환자가 제주도에서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공평하고 질높은 의료서비스 혜택을 내 소득에 상관없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원천적인 이유는 의사는 국가의 공공재라는 전반적인 국민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 금전적 압박 없는 홈닥터들, 환자 치료에 더 집중할 수 있어

그렇다면 네덜란드의 의사는 이미 등록된 환자만 진료하고 병원의 금전적인 이익은 고려하지 않아도 될까?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동네마다 환자가 주치의를 지정하게 돼 있으니 홈닥터는 하루에 환자가 몇 명 오는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홈닥터들은 소수 그룹으로 모여서 병원을 임대해 진료를 본다. 최소한의 자본을 바탕으로 개원을 하기 때문에 초기에 빚을 내거나 무리하게 금전 투자를 하여 병원을 여는 일은 거의 없다. 전문의는 상급 병원의 월급 의사로 소속돼 있기 때문에 환자 몇명을 진찰하든 금전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네덜란드 홈닥터의 연봉은 대기업 근로자와 크게 다르지 않고 의사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급 기술을 갖춘 노동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대부분 네덜란드인의 생각이다.

물론 수술을 집도하는 전문의의 경우 높은 연봉이 보장되지만 지속적으로 논문과 연구 성과를 내야 하고 전문의 자격 유지를 위한 끊임없는 후속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진다.

◇ "돈 벌려고 직업 선택했으면 의대가 아닌 공대에 갔을 것"

네덜란드 직군별 평균 급여를 보여주는 사이트에 따르면 네덜란드의 의사 평균 월급은 최저 4000유로(약 560만원)에서 최대 1만9000유로(약 2665만원)로 집계된다. 네덜란드의 대기업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평균 월급(7000~8000유로)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윙헤이는 '혹시 연봉의 2-3배를 더 벌 수 있는 조건으로 한국에서 의사로 일할 수 있다면 하겠냐'는 질문에 "제가 한국어를 완벽하게 잘 해서 한국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돈을 잘 벌기 위해 직업을 선택한다면 저는 공대에 갔을 거예요"라고 수줍게 대답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의사 개인이 오롯이 마주해야하는 금전적인 구조를 국가가 직접 지휘하고 엄격하게 통제하는 한편 융통성 있는 사보험시스템으로 자발적인 경쟁 하에 끊임 없이 더 나은 의료 보험이 개발될 수 있도록 한다.

그 결과 의사는 여러 윤리적인 문제에서 해방되고 금전적인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의료 서비스 본질인 환자 치료에 헌신하도록 지원받는다.

뉴스1

미 연방 재단 '커먼월스펀드'가 산정한 세계 상위 10위 의료 선진국에 네덜란드가 포함돼 있다. - 국제보험사이트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네덜란드 의료시스템, 유럽 1위-세계 상위 10위권 속해

2017년 커먼웰스펀드 미국 연방 재단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가장 합리적인 의료 비용으로 의료서비스 접근이 가능한 상위 10개국에 속하고 매년 유럽 의료시스템 평가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한다.

의료보험은 1년에 한번 바꿀 수 있고 자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저렴한 보험부터 여러 질병이 보장되는 비싼 보험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임신 기간 동안 검진 비용, 출산과 산후조리 비용까지 전액 무료이며 네덜란드의 산후조리 서비스는 전문 산후조리사가 집으로 찾아와서 아이 돌보기, 산모 케어, 모유 수유 지도 및 기본적인 빨래, 음식 조리 등 가사노동도 돕는다. 개별적으로 비용을 더 내면 시간이나 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

장애가 있어 거동이 불편하거나 심한 후유증이 있는 환자는 간호사와 의사가 집으로 직접 방문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린이의 재활치료, 언어 치료 등은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매년 충분한 의료 인력을 배출하고 있으며 비용은 전액 무료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네덜란드 홈닥터들이 원격진료를 시행했는데, 환자들이 가정에서 앱이나 화상 전화를 통해 진료를 받으면 이메일로 진단서가 나오거나 지정된 약국으로 직접 처방전이 전달된다. 환자는 약을 가지러 가지만 하면 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약이 배달된다.

◇ "한국 의사들, 공공의대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물론 네덜란드의 의료시스템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네덜란드인들은 의료시스템의 공평성과 접근성에서 만족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년 오르는 의료 보험비용에 대해 불만을 갖기도 한다. 전문의 수가 적어 해외에서 전문의를 수입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홈닥터로 근무하는 경력 25년차 의사 반 네어(Van neer)는 "첫 번째로 네덜란드는 작은 국가입니다. 임상 수가 한국과 같이 의술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와 비교 할 수 없겠죠. 네덜란드에서 한국이나 일본으로 특수 의료 분야를 습득하러 가기도 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네덜란드에는 현재 전문의 수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환자들이 오래 기다려야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중증외상외과, 소아심장외과, 흉부외과 등 고도의 의술을 요구하는 일부 전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격 요건을 갖춘 외국인 전문의가 의료 행위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고 지적했다.

반 네어 박사는 그러면서도 의사에게는 직업 윤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사는 절대 환자를 놓고 다른 의사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긴급하게 살려야 하는 환자부터 살려 놓고 그 이후에 정책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군요. 한국에서 외국인 의사를 받을 계획이 없다면 대체 한국의 공공의대 설립이 왜 파업의 이유가 됩니까?”라고 반문했다.
chahjlisa@gmail.com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