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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일본 신임 총리 기시다 후미오

[World Now] 日 스가 장관 '가짜 흙수저' 논란…알고보니 '부농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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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차기 총리로 유력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홈페이지에 자신의 일대기를 만화로 제작해 올려놨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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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스가짱은 1948년 삼나무가 울창한, 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유명한 아키타현 오가쓰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장남이었던 그는 농사일을 도우며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졸업 후,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겠다며 도쿄로 상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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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종이박스(골판지) 공장에 취직해 일하던 중, "시야를 넓히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됩니다.


대학 입학금을 벌기 위해 츠키지 수산시장에서 손수레 운반 아르바이트, 음식점 설거지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대학 진학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을 2년 간 계속했습니다.

지난 8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연설에서도 스가 장관은 자신이 농촌에서 태어나 어렵게 정치인으로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지연도 혈연도 없는 곳에서 정말 제로(0)부터 시작했습니다. 나 같은 평범한 보통 사람도 노력하면 총리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민주주의가 아니겠습니까"

부모의 지역구를 물려받는 '세습 정치인'이 많은 일본 정계에서 자신이 '흙수저',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라는 점을 내세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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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골 딸기 농부 아들, 일본 총리로

아베 총리가 지난 8월 말, 지병인 궤양성대장염으로 갑자기 사임을 발표한 후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스가 대세론이 만들어진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일본 주요 방송사들은 앞다퉈 "아키타 시골 농가 출신이 총리 후보로", "대기만성형 정치인, 고학생 출신 총리 후보" 등으로 스가를 소개하며 그의 인생역전을 특집보도로 쏟아냈습니다.

특히 스가 장관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기사에서는 '쿠로닌(苦勞人)'이라는 표현이 항상 붙었습니다.

'고생한 사람'이란 뜻으로 어린 시절, 많은 고생과 역경을 겪은 입지전적의 인물을 소개할 때 주로 쓰는 말인데요. 이밖에도 그의 성실하고 서민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기사들도 많았습니다.

아사히신문은 "7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복근 운동을 100번 씩 한다"면서 스가의 건강이 총리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스가 띄우기'에 나섰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술을 마시지 않는 스가의 유일한 즐거움과 취미는 의원회관에서 팬케이크를 먹는 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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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스가 '자수성가' 미담은 가짜?

그런데 '자수형가형' 정치인으로 포장돼 왔던 스가의 미담이 사실은 가짜였다는 폭로가 나와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9일 발매된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주간문춘 9월 17일호)은 "스가 미담의 이면...집단취직은 가짜였다"는 기사에서 스가 장관이 가난한 농가가 아니라 사실은 부유한 농가에서 자랐다고 폭로했습니다.

가짜 '흙수저'논란…딸기 농장 매출 40억

스가 장관의 아버지(스가 와사부로)는 태평양 전쟁 중 남만주철도 회사에서 근무했고, 전쟁이 끝난 뒤 부인, 두 딸과 함께 아키타현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알려진 스가의 아버지가 사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지역 조합장을 맡아 51년간 독자적인 딸기 브랜드를 키워온 성공한 농업인이었고, 당시 시의회의원을 4년 역임해 지역사회에서는 유명 인사였다고 슈칸분슌은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현지 딸기 농가 관계자는 "스가의 아버지는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는 딸기 개량 품종을 개발했고, 당시 농협을 통하지 않고 독자적인 판로를 개척해 도쿄와 간사이 지역까지 딸기를 판매해 돈을 벌었다"고 밝혔습니다.

매출도 상당해 40년 전인 1980년도 당시 딸기 농장 매출이 무려 3억 7천만엔, 우리돈으로 약 40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공한 농가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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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어렵지 않아…가짜 학력 논란도

학력 위조설(?)도 불거졌습니다.

스가 장관은 도쿄 상경 후 온갖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대학 야간부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사실은 야간대학이 아니라 사립대학인 호세이(법정法政)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정식으로 입학해 졸업했다는 겁니다.

슈칸분슌은 종이박스 공장과 수산시장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자수성가형 정치인 미담도 과장됐다고 폭로했습니다.

스가 관방장관 친척이 밝힌 내용인데요. 1950~1960년 당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농촌 고학생이 임시열차를 타고 도시로 나와 공장에 취업하는, 이른바 '집단취업'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스가 장관이 수산시장이나 종이박스 공장에서 일한 것은 맞지만, 이 '집단취업'에 해당하는 경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집안이 어려워 공장에서 일한게 아니라 단지 농가일을 이어받길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도쿄로 상경했다는거죠. 또 당시엔 여성이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드물었는데 스가의 두 누나는 대학을 졸업해 고등학교 교사가 됐다고 했습니다.

스가 장관은 누나들로부터 용돈을 충분히 받으며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결코 가난한 환경이 아니었다는게 주간지의 분석입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스가 장관의 미담이 과장됐다는 충격적 폭로가 나오자 "총리가 되기 전부터 가짜 이력을 포장하고 거짓말을 했다"라는 비판이 트위터에 쏟아졌습니다.

또, "왜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이런 의혹을 팩트체크하지 않고 주간지만 보도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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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타 고향에선 '스가 동상' 추진

정치인으로서 치명적일 수 있는 '가짜 미담'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가 장관의 고향인 아키타에서는 벌써부터 '스가 동상'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왔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농촌 '아키타 출신 최초 총리' 탄생에 기대감을 드러내며, 아키타현 유자와시 중앙공원 안에 스가의 동상을 설치하자는 건데요. 유자와시 전 시장이자 스가 장관의 고등학교 2년 선배인 사이토 미쓰요시의 주도로 '스가 동상 제작 실행위원회'가 발족됐고, 1천만엔, 우리돈 1억1천만원 넘는 기부금을 모았다고 마이니치 신문은 전했습니다.

어찌됐건 스가 본인이 그동안 꾸준히 쌓아왔던 '자수성가형' 정치인 이미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총리 후보가 되고, 여론조사 1위가 되는데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입니다.

그런만큼 최근 불거진 스가 장관의 '가짜 흙수저','미담 과장' 논란이 오는 14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도 영향을 줄 지 주목됩니다.

박진주 기자(jinjoo@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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