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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세계 속의 북한

뜬금없는 트럼프 "김정은 건강해" 트윗,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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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워드 신간 『격노』서 김정은 친서 전문 공개

외교 관례 깨…저자세 외교 드러나 北 불쾌할수도

미 대선 앞두고 북·미 관계 악화 시도 차단 가능성

트럼프 우드워드에 "金 조롱마라…핵전쟁 싫어"

北 정보 소상히 안다 신호 보내 경고성 압박 가능성

10일(현지시간) 오전 8시 45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의 8번째 트윗을 올렸다.

“김정은은 건강하다. 절대 그를 과소평가하지 말라.(Kim JongUn is in good health. Never underestimate him!)”

더 이상 설명은 없었다. 맥락이 드러나지 않은 짧은 트윗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이 소식을 전한 이유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오전 8시 24분부터 시작된 트럼프 트윗 주제는 미국 대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크라이나 스캔들 등이었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좌우하는 굵직한 주제들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뜬금없이 이런 트윗을 올린 이유는 불분명하다. 올봄부터 김 위원장 건강을 둘러싸고 이어진 추측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 전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내용이 공개된 데 따른 후폭풍을 관리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서는 오는 15일 발간을 앞두고 전날부터 본격적인 홍보에 들어간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격노(Rage)』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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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의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문서에 서명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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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CNN 등 미 언론사는 사전 입수한 책 사본을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주고받은 친서를 포함해 북ㆍ미 정상회담 뒷이야기를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드워드와 18차례에 걸친 9시간 분량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의 정상 외교 뒷이야기를 털어놨고, 김 위원장이 자신에게 보낸 친서도 공유했다. 자신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는 ”일급 기밀“이라면서 내주지 않았지만, 이 역시 우드워드는 다른 경로로 입수했다.

정상 간 교환한 친서는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관례를 깨고 우드워드에게 친서를 보여주면서 북미 정상 간 친서 외교의 이면이 낱낱이 드러나게 됐다.

기밀로 분류되는 친서 공개는 북한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여길 가능성이 크다. '최고 존엄'인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각하(Excellency)”로 부르며 그와의 만남을 "판타지 영화 같다"고 묘사하는 등 사탕발림을 한 정황이 그대로 담겼기 때문이다.

‘외교적 구애’이긴 하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청하는 등 김 위원장이 적국인 미국 대통령에게 낮은 자세로 읍소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트럼프 트윗은 친서 공개에 대한 김 위원장 반응을 살피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우드워드에게 전화해 “김(정은)을 조롱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당신이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어서 망할 핵전쟁(fucking nuclear war)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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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9월 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를 꺼내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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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 공개가 김 위원장을 자극해 북한이 11월 미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번 트윗에 반영됐을 수 있다. 대선을 50여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북미 관계 악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말은 자신이 그를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우드워드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영리함을 넘어서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대목이 나온다.

전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서 1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뒤 김 위원장을 “자신의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고, 비핵화 대화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는 적"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7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뜬금없이 "나는 그저 비꼰 것이었는데 마치 내가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진짜 러브레터로 생각하는 줄 아는 볼턴은 얼간이”라는 취지의 트윗을 올렸다.

그로부터 이틀 뒤 공개된 친서가 러브레터에 버금가는 사탕발림으로 채워진 점으로 미뤄볼 때 '독재자와 영합한다'는 야당의 비판을 의식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이날 트윗이 순수하게 김 위원장 건강 문제와 연관됐을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은 올봄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가 20일 만에 나타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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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함경남도 검덕지구 피해복구 대책을 논의했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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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 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확대 회의와 정치국회의를 주재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지만, 정확한 그의 건강 상태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건강하다는 트럼프의 트윗은 실제로 그의 건강에 관한 최신 정보를 토대로 올린 것인지 주목된다. 새로 취득한 정보 없이 올린 것일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김 위원장에 대한 정보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 북한을 압박하는 것일 수도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폭스뉴스에서 김 위원장 건강을 둘러싼 소문과 관련해 미국 정부나 정보당국 안에서 우려가 나오느냐는 앵커 질문에 “관련 보고서를 봤고 정보를 알고 있지만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어려움과 코로나19 위험에 처한 북한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할 뜻이 있고, 북미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대화 재개도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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