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8 (목)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美 관세폭탄은 규정 위반" 中 손들어준 WTO…무역전쟁 격화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WTO, 미·중 관세분쟁 첫 1심 판정 내려

"중국만 타깃 삼은 미국, 국제규정 위반"

실질적 효력 작지만…트럼프 정책에 흠집

트럼프 "WTO의 팬 아냐…뭔가 하겠다"

대선 코 앞…트럼프의 중국 비난 거세질듯

겨우 봉합한 무역전쟁, 다시 격화할 수도

이데일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팬이 아니다. 일단 한 번 들여다보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관세 전쟁 첫 판정에서 WTO가 미국이 아닌 중국의 손을 들어준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놓은 말이다. WTO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부과한 관세를 두고 중국이 제소한데 대해, 1심에서 미국이 무역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내걸고 추진한 대(對)중국 무역정책의 몸통을 WTO가 뒤흔든 것이다. 대선이 코 앞인 시기 역시 미묘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의 판정을 보지 못 했다”면서도 “WTO는 중국이 하고 싶은 대로 다 내버려 뒀기 때문에 미국은 WTO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할 것”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WTO의 미·중 관세전쟁 첫 판결 이후 두 나라간 갈등이 더 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내에서는 아예 ‘WTO 보이콧’ 움직임이 커지는 기류다.

WTO “미국, 국제 무역 규정 위반”

AP통신 등에 따르면 WTO에서 1심 역할을 하는 패널(WTO panel)은 이날 미국이 2340억달러(약 276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부과한 관세는 국제 무역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조치가 다른 나라들에는 적용하지 않은 채 중국 제품만 타깃으로 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WTO는 아울러 중국산 수입품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WTO가 미국이냐, 중국이냐 둘을 놓고 중국 쪽을 택한 것이다.

이번 1심은 엄밀히 말해 실질적인 효력이 부족하다. WTO 분쟁 해결 절차는 총 2심제로 구성돼 있다. 1심 패널이 판결을 해도 이에 불복해 상소할 경우 최종심 역할을 하는 상소기구가 또 열린다. 미국은 60일 이내에 상소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지난해 12월 이후 정족수 부족 탓에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중국에 기울어 있고, 미국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왔다.

그렇지만 첫 판결인 만큼 상징적인 의미는 작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무역전쟁의 명분에 금이 가는 결과를 초래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2018년 미국은 중국이 부당하게 정부보조금을 지급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자국의 무역법 제301조에 따라 중국산 제품에 관세 조치를 했다. 미국 무역법 제301조를 보면, 해외에서 미국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불공정 무역 관행이 있을 때 대통령이 관세 등의 제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중국은 이같은 조치가 WTO 회원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이라며 반발해 왔다. 결국 중국은 WTO에 제소했고, WTO는 지난해 1월 관련 패널을 설치한 후 1년 넘게 이 사안을 심리해 왔다.

미·중 무역전쟁 또다시 격화하나

미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로이터통신, AFP통신 등에 따르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불공정 무역 관행을 스스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며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WTO를 활용해 미국 노동자와 기업 등을 이용하도록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WTO의 결정을 존중하고 다자무역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기를 원한다”는 중국 상무부의 논평과는 대조된다.

상황이 이렇자 추후 미·중 무역전쟁이 다시 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두 나라는 지난해 초 WTO의 패널 설치를 전후해 갈등이 심화했으나, 올해 초 1단계 합의를 통해 임시 휴전에 들어갔다. 이번 판정에 미국의 불만이 커질 경우 갈등은 더 커질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외교적 흠집을 냈다”고 평가했다.

두 달도 채 안 남은 미국 대선은 결정적인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지지층 결집이 더해지면 무역 외에 외교, 안보, 기술, 인권 등의 전방위 충돌이 가시화할 게 유력해 보인다. WTO는 이번 판정을 내리면서 “두 나라가 서로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했지만, 이는 요원하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WTO와 미국, 중국 모두 얻을 게 없다는 분석도 있다. △WTO의 판단 자체가 큰 효력 없이 미국의 반발만 불렀다는 점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명분에 금이 갔다는 점 △중국이 미국 조치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던 만큼 WTO 규정 위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 등에서다.

채드 바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WTO의 판정에서 승자는 없다”며 “WTO, 미국, 중국 모두 다 졌다”고 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