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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취재파일] "얼빠진 기관" 조세연의 지역화폐 연구, 내용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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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는 여권의 유력 정치인으로부터 "얼빠진 연구"를 했다며 "얼빠진 기관"이라고 지적을 받는 바람에 난리가 난 국책연구기관이 있습니다. 지난 1991년 설립돼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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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연구는 조세재정 브리프 통권 105에 실려 지난 15일 공개된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입니다. 80쪽가량 되는 본 연구 보고서가 다음 달에 발간될 예정인데, 이에 앞서 언론과 대중에 연구 결과를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 주요 내용을 요약해 보도자료와 함께 낸 것이 이 사달이 났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겼길래? '얼빠진 연구'라는 지적을 받는 것인지, 궁금하니까 빠르게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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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화폐란 무엇인가?

각 지자체가 발행하는 지역화폐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어떻게? 대형마트 등에 못 쓰게 만들어 사용처를 제한하고, 우리 지역 안에서 소비하도록 사용 지역을 제한하는 겁니다. 그 대신, 사용액 환급, 할인 같은 혜택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거죠.

여기에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이 모두 투입되는데, 이번 정부 들어 그 규모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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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발행 규모가 9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커졌습니다. 10% 정도 할인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니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은 9천억 원가량 투입됩니다. 서울사랑상품권, 경기지역화폐, 인천e음, 온통대전, 여민전 등 지자체별로 이름도 다르게 발행되고 있습니다.

● 국가 전체적으로는 역효과…소규모 지자체 피해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이 꿀 같은 지역화폐, 참 좋아 보이는데 뭐가 문제라는 걸까요?

조세연은 우선 지역 제한 조치가 문제라고 봤습니다. 우리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은 늘 테지만, 그것은 결국 다른 지역의 매출 감소를 대가로 하는 '제로섬 게임'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옆 지자체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세종에서 지역화폐를 만들면 대전에서도 만들고 청주에서도 만들고 하는 식으로 근처 지자체에서도 따라서 지역화폐를 발행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조세연은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나라 전체로 봤을 때는 소상공인 매출은 제로섬인데 여기에 재정 들어가고 발행비용, 관리비용 날아가고 전체적인 소비자 후생은 떨어집니다. 거기다가 재정이 많은 대형 지자체가 발행 물량이나 할인 폭을 늘리면 피해는 경제 규모가 작은 지자체에 집중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그 부작용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행정안전부는 지역화폐 발행 비용은 액면가의 2%로 주정합니다. 모바일, 카드형이라면 금융 수수료가 들어가고, 종이로 뽑는다면 인쇄비가 들어갑니다. 단순 계산하면 9조 원의 2%는 1,800억 원 정도 비용이 들게 되네요.

여기에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부 보조금에 따르는 사중손실(dead-weight loss, 자중손실)를 460억 원으로 추정해 추가했습니다. 재정 보조금이 9천억 원이 투입되면 이게 소비자든 기업이든 9천억 원어치의 이익으로 전달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일부가 전체 국가 경제에서 순손실로 사라진다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해서 조세연은 올해 지역화폐 때문에 생기는 경제적 순손실을 연간 2,260억 원 정도로 계산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지자체는 몰라도 중앙 정부의 국고를 써가며 이 정책을 보조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 조세연의 분석 결과입니다. "지자체의 최적 의사결정과 국가 전체의 최적 결정은 다를 수 있다."(연구 책임자 송경호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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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대안은?

'이랬든 저랬든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효과는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연구는 "대형마트의 매출이 소상공인에게 이전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라고 인정합니다. 실제 통계청의 전국 사업체 전수조사 자료를 분석해보니, 동네 마트와 식료품점 등 일부 업종에서는 고용과 매출의 증가 효과가 확인됐습니다.

연구는 정책 대안으로 지역 화폐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지역 제한은 없는 '온누리상품권'을 더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전국적인 사용이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은 지역 제한 때문에 생기는 지자체 간 손익 왜곡 같은 부작용이 없다고 봤습니다. 발행과 관리에 드는 비용도 단일 주체가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고용위기 지역인 군산처럼 경제적 피해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경우 국고 보조도 필요하다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앞서 했던 이야기들이 경제학적 가정을 토대로 한 '모형 분석'이었다면 실제 사업체 전수조사를 토대로 한 결론은 실증 분석이라고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 4월에 나온 2018년까지의 통계청 빅데이터를 활용한 건데, 작년부터 극적인 정책 확대가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아쉬움이 있습니다. 더 많은 지역화폐가 쓰였던 2019년의 통계는 내년 4월까지 기다려야 하고, 이를 분석해서 결론을 도출하는 데까지는 그보다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보고서 말미에는 이런 연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뒤끝을 남깁니다. "2019년 이후 지역화폐 발행액이 대폭 증가하였고, 운영방식 또한 기존의 지류형에서 모바일형, 카드형으로 진화하였다. 이와 같은 지역화폐 여건의 변화가 효과 측면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발생시켜 2019년 이후에는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대다수의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도입하게 되면 지역 내에서 새로이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더욱 작아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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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지역화폐는 부작용이 많지만, 좋은 점도 있는데, 그 좋은 점은 온누리상품권으로도 달성할 수 있으니, 그쪽을 더 활성화하자'는 겁니다. 세종 지역화폐 '여민전' 애용자인 저는 이번 논란을 전해 듣고 "이 좋은 걸 왜!!" 라면서 분노했는데요, 이런 이야기라면 좀 더 같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의 내년도 지역화폐 발행 계획은 올해 9조 원에서 67% 확대된 15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규모 재정도 같이 투입될 예정입니다. 지역화폐 정책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앞으로 이어질 내년도 예산 논의에서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화강윤 기자(hwak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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