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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2020 미국 대선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 최대 쟁점 부상… 美 대선판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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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선 전 신속 지명” 논란

美 대법관 인준까지 평균 69일 걸려

6주 남은 대선전까지 인준 어렵지만

성공 땐 보수 6명·진보 3명 ‘우클릭’

세계일보

미국 ‘진보의 아이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지난 18일(현지시간) 87세로 타계하면서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 인선이 6주 남은 미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미 언론과 정치권은 몇 년째 긴즈버그 대법관의 건강에 관심을 쏟아왔다.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9명의 이념 구성비 때문인데, 긴즈버그 생전에 보수5 대 진보4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긴즈버그 대법관이 2016년 대선 때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했다며 당시부터 긴즈버그가 편파적이라고 느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긴즈버그를 비롯한 진보 성향 대법관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건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 번째 대법관 지명기회를 관철하면 균형추는 보수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된다. CNN은 긴즈버그는 암 투병 중에도 건강관리에 철저했다며 “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긴즈버그가 타계하자 대선 전에 후임 인선을 마무리하겠다고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다음 주에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면서 여성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전날 “긴즈버그 후임 지명자에 대해 상원이 투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후임 인선을 관철하려는 배경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편투표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우편투표 집계과정에 논란이 생길 경우 재검표 여부 등을 대법원이 판단하게 되는데, 이를 의식해 ‘보수’ 대법관을 앉히려 한다는 것이다. 우편투표가 증가하면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해 왔다.

백악관 안팎에서는 보수 성향 여성인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가 유력한 후임자로 거론된다. 노터데임대 로스쿨 교직원이기도 한 배럿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브랫 캐버노 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할 때 마지막까지 후보군에 있었던 인물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배럿 판사는 대표적인 낙태 반대론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배럿 판사를 긴즈버그 후임 자리를 위해 아껴두고 있다”고 말했다고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지난해 3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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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코니 배럿 미국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


민주당은 반발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위터에서 “미국인들은 다음 대법관 선택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 빈자리는 새 대통령이 나오기 전까지 채워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도 “다음 대법관은 대선 이후 새 대통령이 선임해야 한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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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선거 전 인준을 밀어붙이더라도 대선까지 불과 44일 남은 상황에서 시간상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 지명과 청문회, 상원 표결 등 판사 인준에 평균 69일이 걸렸다. 공화당이 상원 인준에 필요한 과반(51석)인 53석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리사 머코스키와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이 대선 전 인준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만큼 이탈표가 더 나올 가능성도 있다.

앞서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6년 2월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별세하자 후임으로 메릭 갈랜드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지만 당시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반대로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승리 후 지명한 닐 고서치가 대법관이 됐다. 4년 만에 상황이 역전됐지만 여전히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다.

한편 NYT에 따르면 지난 10∼16일 메인·노스캐롤라이나·애리조나주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차기 대법관을 선택하기를 바란다’는 답변이 53%로 과반을 차지했다. ‘트럼프가 임명하기를 바란다’는 답변은 41%였다. 보수 매체인 폭스뉴스가 지난 7∼10일 유권자 1191명을 대상으로 ‘누가 대법관 지명을 더 잘할 것이라고 신뢰하느냐’고 물어본 결과에서도 바이든 후보라는 응답이 52%로 트럼프 대통령(45%)을 앞섰다. NYT는 후임 대법관 지명논란이 바이든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대법관 후임 지명을 강행하면서 민주당 유권자들을 결집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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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긴즈버그 대법관은

18일(현지시간)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사진) 대법관은 27년간 미국 연방대법원을 지키며 ‘여성 최초’의 행보를 이어간 인물로, 사법부의 유리천장 혁파에 상징적 역할을 하는 등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81년 연방대법관에 오른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 이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서 긴즈버그 대법관은 군사학교 여성 입학 불허 위헌 결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 문제 등에서 여러 차례 소수자를 대변하는 전향적 판결을 이끌어냈다. 보수 우위의 대법원에서 당당히 반대표를 던지며 명성을 쌓았다.

약자 차별에 맞서고, 다수 의견에 굴하지 않으며 소수 의견을 제시한 긴즈버그 대법관에게 미국 젊은이들은 ‘노토리어스(notorius·악명 높은) R.B.G(긴즈버그 이름의 첫글자 모음)’라는 애칭을 붙이며 응원했다. 하급심에 지침을 제시하는 명확한 의견을 남겨 ‘판사의 판사’라는 명성도 얻었다고 CNN은 전했다.

1933년 유대계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난 긴즈버그 대법관은 학창시절 모두가 아는 책벌레인 동시에 학교 음악대에서 금속 봉을 이용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턴 걸’로도 유명했다. 전액 장학금으로 코넬대에 입학해 1956년 전체 학생 500명 가운데 9명뿐이었던 여학생 중 한 명으로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다. 여성 차별이 남아 있던 당시에 어린 딸의 육아를 병행하는 이중고 속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뉴욕에서 로펌에 취직한 남편을 따라 명문 컬럼비아 로스쿨로 옮긴 뒤 탁월한 성적으로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럿거스 대학의 법학 교수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는 자신의 월급이 남성 동료보다 낮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여교수들과 ‘동등한 임금’ 운동에 나서 여성 교직원 급여 인상을 이뤄냈다. 1972년에는 여성 최초로 모교인 컬럼비아 로스쿨의 교수가 됐다. 성 평등과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변론에 열정적으로 참여했으며, 미국 시민자유연합(ACLU)의 여성 인권운동 프로젝트에서 수석 변호사를 맡아 각종 소송을 주도했다. 여러 대법원 사건에서 승소, 성적 불평등에 관한 판례를 바꾸면서 여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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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미국 진보 진영의 상징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18일(현지시간) 별세하자 다음날 워싱턴 대법원 청사 앞에 고인을 추모하는 꽃다발과 촛불, 메시지 카드 등이 가득 놓여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긴즈버그 대법관 별세 소식에 대법원 앞에는 수백명의 시민이 촛불과 꽃, 메시지 카드 등을 들고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투병 중에도 암을 극복하고 계속 법원에 봉직하는 등 ‘끝까지 투사’였다”며 백악관과 모든 연방 정부 건물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위축되지 않고 맹렬하게 모두를 위한 인권을 추구한 여성이었다”고 애도했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정지혜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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