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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오락실 키드, 조회수 38억 ‘격투만화 대장’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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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연재한 소년 격투 만화

스케일·작화력으로 3대장 등극

"난 시골서 그림 그리던 찌질이

그때 쌓인 울분, 만화에 쏟은 것

그림은 재능 아닌 암기에 달려"

조선일보

지난 21일 유튜브 팬미팅에 참석한 박용제 작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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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그는 스스로를 “찌질이”로 회고했다. “경남 거창 시골서 학교 다니면서 존재감 없이 공책에 낙서하고는 옆자리 친구한테 ‘어때?’ 묻고 흡족해하는 그런 캐릭터였죠. 요즘 말로는 ‘아싸’ 정도 되겠네요.” 그랬던 그가 현재 가장 잘나가는 소년 격투 만화를 그리고 있다. 웹툰 작가 박용제(39)씨는 “그때 쌓인 울분과 한을 만화에 다 쏟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난 약하지 않아”라고.

박씨가 2011년부터 10년째 연재 중인 웹툰 ‘갓 오브 하이스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센 고등학생을 뽑는 격투 대회가 열리고, 알고 보니 주인공이 제천대성이고, 신(神)들과도 대결한다는 황당무계한 줄거리다. 각종 격술과 마법으로 서로 치고받는 이 단순한 만화가 10년간 누적 조회 38억회를 기록하며 현재 ‘한국 격투 만화 3대장’으로 불린다. 만화는 실제 게임과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21일 열린 유튜브 팬미팅에서 박씨는 “오락실 세대다 보니 1990년대 오락실 게임 ‘킹 오브 파이터즈’ ‘아랑전설’ 등에 열광하던 기억을 짬뽕했다”고 말했다." 이번 팬미팅은 부천국제만화축제 일환으로, 행사는 23년 만에 처음 온라인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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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오브 하이스쿨' 주인공 진모리(가운데)가 상대와 대결하고 있다. 이 웹툰은 수준 높은 작화 실력으로 정평이 나있다.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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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소년 액션 웹툰 ‘쎈놈’으로 데뷔했다. 최강 싸움꾼이 되려는 고등학생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소년 만화는 주류가 아니었다. “주로 일상 툰이나 개그 만화가 대세였죠. 도저히 경쟁이 안 될 것 같았어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오락실 키드에게 그 답은 액션이었다. “오락뿐 아니라 ‘드래곤볼’ 같은 일본 만화 보면서 언제나 전율했다. 노력·결투·승리·우정…. 진정한 남자의 꿈이니까.”

외딴곳에서 수련했다. “지방에서 살다 보니 사실상 폐관(閉關) 수련이었다. 피구왕 통키가 나무에 피구공 던지며 연습하듯 혼자 외롭게 열심히 그렸다. 서울 가면 다 휩쓸어버리겠다고.” 그러고 그는 휩쓸었다. 성공의 가장 큰 비중은 작화력이 차지한다. 회당 100~200컷에 이르는 두꺼운 분량에도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드로잉. 정작 박씨는 “그림은 재능이 아니라 암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그림은 감각이 아닌 기술 영역이에요. 영어 단어 많이 외워두면 회화도 잘되듯, 드로잉도 인체 여러 포즈를 암기해서 연습하면 숙달된 응용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그에게는 배경·채색 조수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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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에 등장하는 제천대성(손오공)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웹툰 주인공 진모리.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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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껸과 공수도 영상 등을 참고하긴 하지만, 소년 만화 특유의 ‘뻥’이 심하다. 장풍이나 뇌전(雷電)을 쏘는 건 애교다. 등장인물 중 사탄이 200경9600조7450억개의 분신으로 쪼개지는 장면은 ‘과장이 지나치다’는 팬들의 애정 어린 놀림에 시달린다. 그는 “만화의 모토는 ‘뻥’을 잘 치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엔 아예 해(垓) 단위로 분신하는 장면을 그려버렸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건 리얼리티가 아니에요.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 할 때, 거기 나오는 유술(柔術)이 실제랑 똑같던가요?”

그에게 웹툰 시장은 “격투장”이다. “정답이 없어요. 왕좌도 자주 바뀌죠. 그러니 유행에 휘둘릴 필요 없습니다. ‘나는 뭘 그리고 싶은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게 구체적일수록 오래 살아남는 작가가 되겠죠.” 만화는 끝장을 향하고 있다. “이제 거의 최종입니다.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있어요. 오랜 시간 청춘을 바쳐 웹툰을 봐준 독자들의 추억을 망가뜨리지 않겠습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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