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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로고는 작고 음악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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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롤링 스톤스가 로고를 파란색으로 비튼 ‘Blue & Lonesome’ 앨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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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


2020년 9월 23일 수요일 맑음. 티셔츠. #335 The Rolling Stones ‘Blue And Lonesome’(2016년)

붉은 입술과 길게 내민 혓바닥, 으스스한 해골과 공포영화 제목 같은 글씨체, 알파벳 ‘I’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N’과 좌우 바뀐 ‘N’….

여름철 거리를 걷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치는 티셔츠 디자인이다. 처음부터 차례로 영국 밴드 ‘롤링 스톤스’, 미국 밴드 ‘미스피츠(Misfits)’와 ‘나인 인치 네일스(NIN)’의 로고다. 이 팀들의 공통점은 음악보다 로고가 더 유명한 팀들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음악 소비가 무형의 디지털 스트리밍 위주로 넘어가면서 음악가들이 내놓는 유형의 무언가가 되레 인기를 끄는 시대다. 재생할 기기는 없어도 CD, 카세트테이프, LP를 사 모으고 음악가의 얼굴이나 로고가 박힌 천가방이나 티셔츠를 팬들은 구입한다. 어떤 로고는 너무 절묘하게 잘 만든 나머지 그 음악의 팬이 아니더라도 팔려나간다.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통조림처럼 말이다.

더욱이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콘서트까지 자취를 감추면서 적잖은 음악가들에게 수익의 일등공신은 디자인 상품이 됐다. 소규모의 인디 음악가들도 이제 전문업체에 맡겨 팀 로고를 만들고 티셔츠와 컵 같은 상품을 기본적으로 제작한다. 그들에게 롤링 스톤스, 미스피츠, 나인 인치 네일스 등은 성배격이다.

저 유명한 로고들은 음악을 몰라도 입고 싶어질 정도로 ‘왠지 그냥 쿨’할 뿐만 아니다. 저마다 음악을 제대로 표현해냈다. 믹 재거(보컬)와 키스 리처즈(기타)가 대표하는 악동 이미지와 쾌락주의적 가사가 저 대놓고 들이대는 새빨간 혓바닥에서 생동한다.

미스피츠는 ‘호러 펑크’의 창시자다. B급 공포영화를 로큰롤 무대로 구현하겠다며 나타난 이들. 펑크 록의 질주감에 거침없는 호러 가사를 장착한 이들에게 저 조악하고 삐뚤빼뚤한 글씨체마저 그만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인더스트리얼 록 장르가 주무기다. 때로 효율이 강조된 미니멀한 산업기계를 연주하듯 차갑고 냉소적인 이들의 음악에 저 세 글자의 뒤틀린 미니멀리즘이 주는 과묵하나 의미심장한 인상이 자연스레 겹친다.

이제 눈을 감고 들어볼 차례다. 자고로 로고는 작고 음악은 장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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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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