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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경제민주화는 선거운동이다[오늘과 내일/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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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표 구하기 가까워

‘공정경제’와 함께 노동개혁에도 손대야

동아일보

김광현 논설위원


민주화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1인 1표’다. 경제민주화는 이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불평등 해소나 약자와 강자의 균형을 맞춘다는 정도로 해석하면 너무 막연하다. 노동운동, 소비자운동도 아니고 ‘1인 1표’는 더더구나 아니다. 재벌개혁이나 이익공유제라고 하면 범위가 너무 좁다. 솔직히 말해 대학·대학원 때 경제경영 전공을 했고 경제 관련 취재를 20년 이상 한 필자도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

이런 경제민주화가 요즘 다시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개정 및 제정안이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상정됐다. 이들 법안에 정부 여당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공정경제 3법’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미스터 경제민주화’로 부르면서 이들 법안 처리에 도움을 요청했다. 재계에서는 기업 활동을 옥죄는 ‘기업규제 3법’이라고 부른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도 저도 아니다. 김 위원장은 정강정책에 있는 경제민주화와 모순되지 않는다며 이들 법안에 긍정적 입장이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등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당의 정체성에 위배된다며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경제민주화가 경제경영학계의 논의 대상이 아니라 정당의 정책이나 대선후보자들의 선거공약에 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의 거의 유일한 공통 공약이 경제민주화였다. 일반 국민들이 다중대표소송이 뭔지, 감사위원을 분리선임하면 뭐가 달라지는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잘 알기 힘들다. 이들 법이 통과되는 것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지, 해악이 될지 판단하기는 더 어렵다.

경제와 정치를 두부 자르듯 나눌 수는 없지만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의미보다 정치용어에 가깝다. 선거철에 후보들이 너나없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가지 않고 반드시 전통시장에 가서 좌판에서 감자도 몇 개 사고 어묵도 사 먹는 장면이 경제민주화와 어울리는 이미지다. 한마디로 경제민주화 주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위한 선거운동이다. 정치인들에게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나라의 미래와 청년들을 생각해서라도 경제도 조금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슬로건으로서의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려면 대기업, 재벌 총수에 대한 견제 장치만 둘 게 아니라 거대 노조의 기득권에 대한 견제도 있어야 균형이 맞다. 한국 노조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다. 노조 가입률을 보면 그렇지 않아도 철밥통인 공공부문이 68%로 민간의 10%보다 훨씬 높다. 작년에 파업한 141개 회사 중 77%가 1000명 이상 사업장이다. 이들 거대 노조의 기득권에 의해 피해를 보는 측은 노동 취약계층이다. 대표적인 것이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해 보지도 못한 청년층 미취업자들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이들의 특권을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 활동으로 해고된 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노동법 개정을 통해 날개를 달아주려 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포함해 한국 경제와 관련 보고서에서 빠지지 않는 권고 내용이 노동개혁이다. 비정규직, 중소기업, 비노조원, 취업준비생 같은 노동 취약계층의 권리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노동시장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 약자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경제민주화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경제민주화란 아름다운 이름 아래 ‘공정경제’를 추진하겠다면 마땅히 ‘노동개혁’도 빠져서는 안 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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