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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기고] 약탈적 화물운송시장과 안전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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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인 화물운송시장의 안전운임제가 제도 안착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안전운임제의 효과를 의도적으로 무력화하려는 일부 화주와 운송사업자들의 불법과 편법이 도를 넘고 있다. 최저임금이 노동자들의 최소한 생계유지를 위해 사용자가 지불해야 할 최저임금선이라면, 안전운임은 생계유지와 더불어 과적, 과속, 과로로 대표되는 위험한 질주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해 화물차주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경향신문

백두주 한국안전운임연구단장 사회학 박사


안전운임제는 2002년 이후 화물차주들이 주기적인 물류중단 사태까지 초래하면서 꾸준히 요구해왔고, 우여곡절 끝에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2018년 3월 관련 법률이 통과됐다. 그 결과 지난해 7월 화주, 운송사업자, 화물차주들로 구성된 안전운임위원회에서 논란 끝에 올해 적용되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의 안전운임이 고시됐다.

그러나 현재 안전운임제의 모습은 어떠한가? 적정한 운임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효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일부 화주와 운수사업자들의 불법, 편법행위로 인해 안전운임제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화주와 운송사업자들이 안전운임제 취지 자체를 부정하려는 ‘고의성’에 있다. 이에 더해 정부의 정책추진 역량 부족도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불법, 편법행위가 만연하게 된 원인이다.

현장의 불법, 편법 사례를 신고하기 위해 안전운임신고센터가 설치돼 있긴 하지만, 사실상 형해화돼 있다. 신고자의 신상이 공개돼 계약해지 등 불이익이 뻔히 예상되는데 제대로 된 신고가 가능할 리 없다. 혹여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신고하더라도 적절한 조사와 처벌조치가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수십년간 누적돼온 화물운송시장의 적폐를 일소하고 산업구조개혁이 동반되지 않는 한 제도 도입의 효과도 제한적일 것이다. 화물운송시장은 전형적인 ‘약탈적 시장논리’가 작동하는 대표적 분야다. ‘약탈적 시장’이란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와 힘을 갖는 행위자가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유·무형의 손실을 강요해 불공정한 가치배분이 구조화된 시장을 뜻한다. 화물운송시장은 대형 화주를 정점으로, 그 밑으로 중·소형 운수사업자들이 난립하면서 다단계 구조를 이룬다. 직접 운송을 담당하는 화물차주는 공급사슬의 최말단에 위치해 가치배분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돼 왔다. 안전운임제의 핵심은 이러한 ‘약탈적 시장’을 ‘공정한 시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화물차주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물동량의 급격한 감소와 법적으로 보장된 안전운임제가 현장에서 불법, 편법으로 무력화되면서 전례 없는 고강도 ‘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위기국면에서 제대로 된 안전운임제의 시행은 화물차주들의 대규모 파산을 막을 수 있는 최후 보루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내년 안전운임고시를 위한 2기 안전운임위원회가 가동 중이다. 적정한 운임인상률 산정과 더불어 현장에서 불법, 편법행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백두주 한국안전운임연구단장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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