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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기고] 원전 안전 둘러싼 오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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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9월17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대표)의 기고문인 ‘원전 사고를 막으려면’을 보았다. 그 주장에 지난 태풍에 원자력발전소가 정지된 것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있음을 확인했다.

경향신문

박문규 세종대 교수 양자원자력공학과


원전의 중요한 안전설계 원칙 중 하나는 “외부 이상이나 고장 시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 안전한 상태로 저절로 바뀌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태풍으로 송전선에 이상이 생겨 전력을 보낼 곳이 없어지면 이 원칙에 따라 원전은 정지되도록 설계한다. 현대 과학은 합리적 과정으로 위험을 관리하도록 발전돼 왔고 이러한 설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오랜 기간 전문가들의 연구와 토론으로 정립된 원칙을 감(感)만으로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

한때 수출용 차량이 내수용보다 안전하다는 의혹이 있었으나 두 차를 충돌시키는 안전성 테스트로 사실무근임이 밝혀진 적이 있다. 이런 의혹이 생긴 이유는 나라마다 다른 규제환경을 무시해서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수출한 원전은 뜨거운 사막에 있어 냉각장치가 커지고, 핀란드는 겨울에 바다도 얼기에 공랭식 냉각기를 추가로 요구하기도 한다. 부지 환경에 따라 필요한 설비에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국내 원전은 비상디젤발전기가 원전 1기당 2대에 불과한데 미국에서 표준설계인증을 받은 APR1400은 원전 1기당 4대”이므로 “국내 원전은 안전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두 원전의 차이를 보는 관점이 과학적 핵심에서 벗어났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규제기관은 무더운 지역에도 원전을 지을 수 있도록 포괄적 설계를 요구한다. 이 경우 발전소 자체가 사용하는 전력량이 늘어나므로 비상디젤발전기 용량도 커져야 한다. 하지만 제작 가능한 비상디젤발전기의 용량은 제한이 있으므로 미국에선 2대를 설치해 국내의 1대 기능을 수행토록 한다. 이것이 안전성을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

난 APR1400 원전의 미국 설계인증 추진 책임자로 우리 원전의 안전성 수준을 치열하게 파악해 왔다. 수출용은 다르게 만든다는 오해의 시대는 지났다.

박문규 세종대 교수 양자원자력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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